대선정국 재계 덮친 배임죄 공포
정권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대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는 물려주는 정권이나 창출하는 정권이나 나름대로 대기업을 싱대로 군기잡기에 나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권주자들이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제시하자 대기업들 시쳇말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대기업들이 이처럼 마음을 졸이는 것은 결국 총수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대놓고 말을 못하지만‘때 되면 왜 총수가 희생양 돼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6년과 2009년에 비자금조성·배임·조세포탈,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8년 비자금조성·횡령·배임 판결을 받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불법 대선자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00년 횡령·배임으로 형사처벌을 받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횡령·배임 혐의로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더욱이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은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이례적으로 법정구속 돼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이현령비현령’ 포괄적 배임(背任) 적용 논란= 재벌 총수들의 특가법상 처벌 형태를 보면 이처럼 횡령 및 배임죄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전적 의미의 ‘횡령’은 상대방의 재물을 불법으로 차지해 사사로이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배임’은 재산상의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제3자에게 피해를 끼친 경우다. 횡령과 배임의 차이는 크게 재물이냐 아니면 재산상의 이익인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횡령 혐의가 없다면 배임 혐의 역시 없다고 보는 게 법조게 일반적 시각이다.
문제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증거가 수반되는 횡령과 달리 배임은 인정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라는데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정에서 배임죄는 비교적 엄격하게 다루고 있지만 적용기준은 너무 다양하다”며 “1차적으로 수사기관에서 거르고 나면 전적으로 판사의 성향에 따라 유·무죄가 가려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임죄 처벌 기준은 대법원 판례를 따르고 있지만 당시 여론이나 정세 등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 완벽한 법적 객관성을 답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즉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고무줄 판결도 가능하다는 게 법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배임 행위 기준에 대한 끝없는 논쟁 = 법조계에서‘어디까지를 배임 행위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 부터 있어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배임죄에 대해 구체적이고 법리적인 정의를 내리라고 하면 명확하게 답변할 법조인은 아마 없을 것”이라며 “배임죄 인정범위가 헌법이 요구하는‘명확성의 원칙’에 부합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2006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24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구자원 LIG그룹 회장 일가 경우 혐의가 입증되면 배임죄 추가가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시작이다. 지난해 2월 LIG건설에 대한 기업회생 절차 신청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LIG건설 명의로 242억2000만원의 CP를 발행한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정구속 중인 김승연 한화 회장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김 회장은 2004년 지급보증 연장과 부동산 매입으로 외환위기 이후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던 비계열 특수회사(한유통, 웰롭)를 회생시켰다. 한화는 이들 특수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면 당연히 그룹 계열사들이 지원하는 게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법상 계열사는 아니지만 소유지분 관계로 얽힌 특수회사를 사회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구조조정을 한 건 배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화 측 항변은 차치하고라도 법적으로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당초 검찰은 각종 횡령 혐의를 포함해 김 회장을 기소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횡령죄가 없으면 배임죄도 없다’는 법적 해석이다. 횡령죄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임죄를 적용시켜야 하는‘특별한 사유’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호한 배임 기준…CEO는 잠재적 범죄자?”= 재계는 이처럼 모호한 배임기준으로 경영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은 기업이나 국가경제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책임경영 차원에서 기업 내부적으로 내린 결단은 존중돼댜 한다는 게 중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기요금 결정은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할 사안인데도 한국전력 소액주주들이 이유 불문하고 김쌍수 전 사장을 배임협의로 고소한 사건을 예로 들며 “김승연 회장 법정구속 사태를 계기로 배임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