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재물만 좇는 사회 <중>한탕주의의 만연
#주부 김현주(37·여)씨는 지난달 2년 만기 적금액 2000만원을 불려볼 욕심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3일 만에 반토막이 났다. 초조해진 이씨는 남편 몰래 한번에 손실을 만회하려는 생각에 선물·옵션 등 고위험 투자에 손을 댔다가 그나마 남아있던 절반마저 모두 거덜나고 말았다.
절망의 시대, 대한민국이 또 다시 ‘한탕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경기불안이 지속되면서 요행을 바라는 한탕주의 풍조가 평배해지고 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에 따라 일단 한몫 잡고 보자는 식의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늘어난 방증이다.
◇증권가, 연간 2경원 돈다= 우리 증권가에는 주식과 채권, 펀드, 선물 등 각종 금융투자상품의 거래로 한해 2경원이 넘는 돈이 몰리고 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를 맞은 해에 4500조원대에 불과했던 자본시장이 12년 만에 5배나 증가한 셈이다.
최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0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증권사를 통한 금융투자상품 위탁매매 거래대금이 2경2378조원으로 집계됐다. 증권사들이 거둬들인 수수료만 5조3618억원. 이중 파생상품인 선물은 거래액이 1경2964조원으로 전체 거래액의 57.9%를 차지했다. 주식이 3875조원, 채권이 4130조원, 옵션이 772조원, 주식워런트증권(ELW)과 파생결합증권(ELS·DLS) 434조원, 펀드 94조원 순으로 집계됐다.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는 법. 이처럼 자본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해짐에 따라 일반 투자자에게까지 주식과 펀드의 열풍이 불어닥쳤다. 대부분 가정에서 1~2명은 주식이나 펀드 계좌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주식투자 인구만 봐도 지난해 478만7000명을 기록해 전체 인구의 9.79%, 경제 활동인구의 19.51%에 달했다.
문제는 도박판으로 변질한 일부 파생상품 등을 통해 대박을 꿈꾸는 ‘한탕주의’풍조가 만연해 금융자본주의의 그림자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5월 선물투자에 실패한 40대 남성이 옵션 만기일에 맞춰 주가 폭락을 노리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에 사제폭탄을 설치했다가 검거된 사건은 요즘 시대상의 대표적 단면이다.
지난 8월 첫선을 보인 연금복권은 10주 연속 매진 행진을 기록했다. 로또 붐에 따른 한탕주의 논란을 잠재우고 당첨에 따른 부작용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연금복권 520’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연금복권의 이면에는 ‘노후 불안’이라는 서민들의 애환이 드리워져 있다.
대구대 이승협 사회대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은퇴 준비가 안 돼 있고,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확천금인 로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며 “연금복권 광풍 현상을 뒤집어 보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노후 대비에 취약하다는 반증”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정부가 국민들의 노후불안 심리를 이용해 사행심을 조장하고 조세저항 없이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복권은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걷어가는 수단"이라며 "건전한 근로 의욕 대신 사행 행위를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많은 복권을 정부가 남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도박앓이’ 중= 지난 4월 전라북도 김제에서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운영 수익금 110억여원이 5만원권 현찰 다발로 마늘밭에서 발견돼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인터넷 도박 시장이 얼마나 성업을 이루기에 개장 2년도 안 돼 그 많은 돈을 챙겼는 지 혀를 찰 정도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경기침체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서민들이 현대판 도박의 주된 희생양이 되고 있다. 소득은 줄고 집값은 떨어지는 데 대출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지경에 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탕주의에 따른 범죄와 자살, 가정파탄 등은 일차적인 폐해에 불과하다. 팍팍한 경제현실과 심리적 박탈감이 서민들의 근로의욕 상실로 이어질 경우 한국경제의 존립기반 자체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6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다이야기 사태 당시 게임 이용자들이 입은 금전적 손실만 6조원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은 일용직 근로자를 포함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서민들이었다. 금전적 손실은 물론 가정파탄과 자살, 범죄 등으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