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의 오른팔은 매일 새벽 '쪽지 보고서'를 올린다

입력 2011-06-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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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의 남자들]③현대차그룹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보필하는 최측근은 그룹의 전략과 재무는 물론 인사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보고는 이른 아침 간단한 메모를 통해 정 회장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중국현지 공장을 방문중인 정몽구 회장.
매일 아침,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정몽구 회장의 집무실 책상에는 한 장의 쪽지가 오롯이 올려져있다. 오전 6시 안팎이면 사옥에 일찌감치 도착하는 정 회장이 집무실에 올라가기 전, 이미 촌철과 같은 핵심을 담은 쪽지는 정 회장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장의 쪽지는 그룹 전체의 각종 현안과 시장 동향, 전략 등은 물론 인사까지 영향을 미친다. 단순한 보고형식의 내용이지만 이 쪽지의 결과는 결코 단순한 보고로 끝나지 않는 셈이다.

◇품질경영의 뒤에 숨겨진 전문경영인의 보필=지난 5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시장의 판매를 담당하는 베이징현대 우수 딜러들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대차의 우수한 품질과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판매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같은 품질에 대한 자신감은 10여년을 이어온 정 회장의 ‘품질경영’에서 시작한다. 정 회장은 전문경영인을 측근에 두고 이들의 의견을 귀담아듣는다. 최측근의 의견을 귀담아 듣되 품질에 대한 본연의 의지는 단 한번도 타협이 없었다.

이러한 품질경영과 함께 정 회장이 뚜렷하게 스스로의 기준을 내세워온 부분이 임원인사다. 최근 물러난 이현순 부회장의 경우 특정 전략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것이 현대차 안팎의 전언이다.

반면 책임을 명확하게 묻되 언젠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정 회장의 인사 스타일은 고위 임원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요인이다.

실예로 현대차 고위임원을 지낸 A씨는 최근 지인들에게 "이제 핸드폰 번호를 바꿔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 2년전 문책성 인사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이후 정 회장이 다시 자신을 불러줄 것을 기대하며 양재동을 바라봐왔다. 그가 "핸드폰을 바꿔야겠다"고 말한 것은 이제 기대감을 접어야겠다는 의미였다.

▲김용환 현대차 기획담당 부회장(왼쪽)과 이정대 현대차 부회장

◇최측근에서 정 회장 보필하는 기획·재무 전문가=정몽구 회장의 최측근에서 그를 보좌하는 남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해 현대건설 M&A에 성공한 이후 오랜 믿음으로 정 회장을 보필했던 남자들은 하나둘 다른 보직을 명받았다. 설영흥 부회장을 시작으로 이정대, 최한영 부회장 등이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김용환 부회장도 서서히 수면 위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기획과 연구개발, 노무, 품질 등 각 분야를 총괄하는 부회장은 여섯 명 정도다.

이 가운데 이정대 현대차 부회장의 경우 현대건설 인수후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기타 비상무이사'로 등재된 그는 현대차는 물론 현대건설 업무까지 아우르게된다. 이를 두고 정 회장이 가장 믿을만한 인물을 적절한 시기에 최적의 위치에 배치했다는 평이 이어졌다.

이정대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가장 측근에서 오랜 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재무관련 업무를 총괄해왔다. 그가 현대건설에 몸담게 된것을 두고 향후 그룹 지배구조와 연관된 인사라는 풀이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현대차 비자금 사건 당시 재경본부장을 맡았었다. 이로인해 2007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2008년 8월에 특별사면되기도 했다.

1955년 충남 논산출신인 그는 충남대를 졸업하고 현대차서비스에 입사해 1981년 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의 재무담당으로 근무했다.

이 무렵 명확한 일처리와 업무추진으로 인해 정 회장의 눈에 들어온 그는 1999년 현대차 경영관리실장을 시작으로 2007년 재경본부장에 올랐다. 이후 2008년 경영기획총괄 부회장을 거쳐 2009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현대차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현대건설 인수작업에서 공을 세운 김용환 기획담당 부회장 역시 정 회장을 측근에서 보필해온 인물이다. 최근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 역시 진중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앞세워 오랜시간 정 회장을 보필해왔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1955년 경기 평택 출생으로 동국대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정 회장에게 신임을 얻어온 그는 2007년 현대차 해외영업본부장을 거쳐 그룹의 핵심격인 기획조정실장(사장)까지 올랐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괄목성장을 이어가는 현대차의 핵심전략 대부분이 이 무렵 그룹의 기획조정실에서 짜낸 아이디어라는게 최근 현대차 안팎의 분석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김 부회장은 2009년말 기획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무와 기획분야의 전문경영인으로서 남다른 능력을 지녔으나 정 회장을 보필할 때에는 철저하게 자신을 낮춰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품질경영을 앞세운 정 회장의 경영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현대차 안팎의 평가다.

이른 아침, 정 회장의 집무실 책상에 올려져있는 작은 쪽지의 주인공 역시 정 회장의 경영전략을 보필하고 있는 몇몇 부회장단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3대에 걸려 대물림되는 오너의 남자=경영전반에 걸쳐 정 회장을 보필하는 부회장단 못지 않게 정 회장이 각별하게 생각하는 오너의 남자도 있다. 바로 3대에 걸쳐 대물림되는 오너의 남자, 현대글로비스의 김경배 대표이사. 현대차그룹은 물론 재계 안팎에서도 3대를 이어 오너가를 보필하고 있는 인물은 이례적이다.

그가 본격적인 오너의 남자로 추앙받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무렵이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수행비서로 일했던 당시 현대모비스 김경배 기획이사를 지난 비서실장(상무)으로 임명했다.

1990년부터 10년 동안 정 명예회장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행비서로 근무했던 그는 공식적인 수행비서 역할이 끝난 2000년 이후에도 정 명예회장의 말년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다.

김경배 글로비스 대표는 기아차를 인수한 이후 현대차그룹의 성장과정에서 핵심 보직을 두루 맡았던 현대정공 출신 인재 가운데 하나다. 정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난 이후 현대모비스로 자리를 옮긴 그는 기획담당 이사까지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고 정몽구 회장 일가 2대에 걸쳐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로 관심을 모았다.

2000년대 말 현대정공 출신의 핵심 인물들이 그룹내 비주류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경배 비서실장 역시 글로비스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함께 그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두터운 신뢰도 함께 얻고 있다는 전언도 이어진다.

재계 일각에선 김 대표가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글로비스로 자리를 옮긴 데 대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모종의 임무를 띠고 간 것 아니겠느냐"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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