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금리 7년만에 최저ㆍ엔화 연중최고.. 정부는 속수무책
경기 침체로 신음하고 있는 일본이 팔리고 있다. 긍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국채에 매수세가 폭주하면서 장기금리는 7년 만에 1%선이 무너졌고 달러 유로에 대한 헤지수단으로 엔이 각광받으면서 엔은 달러에 대해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경기 불안으로 미국과 유로존이 저금리와 자국 통화 약세로 생존을 모색하는 가운데 정치적 리더십과 경제정책 부재로 옴짝달싹도 못하는 일본이 시장의 표적이 된 모습이 역력하다.

일본의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4일 0.995%까지 하락해 2003년 8월 14일 이래 7년여 만에 1%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일본 경기에까지 영향을 미쳐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국채에 매수세가 몰렸다.
전날 미 경제지표가 시장 예상을 밑돌아 경기 회복이 둔화할 것이라는 인식이 대두되면서 미국 장기금리가 하락, 일본 장기금리도 동반 하락한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미국의 금융완화 관측이었다.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10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의 만기 이후에도 보유를 지속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에 따라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의 무게가 ‘추가 완화’쪽에 쏠렸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7월 의회 증언에서 '미 경제의 이례적인 불확실성'을 지적한 바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2003년 당시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바람직하지 않은 인플레율 하락”에 대해 언급하고 디플레 방지 차원의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을 상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의 제임스 불라드 총재도 지난달 말 보고서에서 “연준의 ‘상당기간’ 저금리 정책이 ‘일본형 디플레이션’이라는 전례없는 함정이라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이를 피하는 방법은 양적 완화가 유효하다”며 추가 완화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가 이끄는 유럽중앙은행(ECB)도 재정 재건을 서두르면서 금융정책을 완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의 이 같은 관측에 ECB는 굳이 부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
시장에서는 미국ㆍ유럽 당국의 속내에 주목하고 있다.
양쪽 모두 금융완화의 목적을 디플레 방지와 금융 불안 해소라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은 자국 통화 약세를 통한 수출 확대를 위해 현재의 시장을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엔은 한때 달러당 85.32엔까지 올라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엔은 1995년 4월 기록한 2차대전 이후 최고치인 79.75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유로에 대해서는 유로당 112.87엔을 나타냈다.
프랑수와 피용 프랑스 총리는 “긴축 재정에 따른 내수 침체는 유로 하락에 의한 수출 확대로 거의 상쇄될 수 있다”며 유로 약세를 용인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버락 오바마 미 정권도 달러 약세를 묵인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 원동력을 개인소비에서 수출과 설비투자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향후 5년간 수출을 2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이 그 방증이다.
미국과 유럽의 환율 방치에 일본은 속수무책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일본은행의 카드는 바닥났고 거액의 재정적자로 정부의 정책도 막다른 골목이다. 여기다 지난달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간 나오토 정부는 손발이 꽁꽁 묶인 형국이다.
일본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연일 환율과 금리하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일자 사설을 통해 정부가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디플레 상황에서 엔화 강세는 일본 경제에 무거운 짐이 될 뿐 아니라 기업활동을 저해해 해외 이전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자국 내 고용 감소는 물론이다.
노다 요시히코 금융상은 “엔화 움직임이 치우쳐 있다"며 "환율 동향을 주시하겠다”고 말해 환율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바클레이스 캐피털의 래가브 수바라오 외환투자전략가는 “일본은행이 엔의 상승을 막기 위해 가까운 장래에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엔화 강세가 아직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있는데다 일본은행의 조치가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닛케이225지수가 9000선까지 떨어지지 않는한 개입가능성은 정당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