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이 ‘내우외환(內憂外患)’ 위기에 직면했다. 밖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 부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고 안방에서는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매번 위기 상황을 겪지만 이번엔 진짜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관세 정책 시행 이후 석 달이 지나면서 그룹에 다가올 위협은 가늠할 수 없는 정도다. 현지 생산 물량 증대와 재고 물량 투입 등 방어 작전을 폈지만 이마저도 버티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단순 계산하면 현대차는 현지 재고가 약 한 달분이 남았고 기아는 이미 바닥난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업체들이 관세 정책에 못 이겨 줄줄이 판매가를 인상한 만큼 그룹도 압박을 더는 피하기 어려운 국면에 도달했다.
외부 악재 속 내수도 불안하다. 국내 시장은 경기 불황 속에서 자동차 소비 감소와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의 여파로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특히 현대차의 전기차를 생산하는 울산공장은 올해 들어서만 네 번째 가동을 중단했다. 주력 모델 아이오닉 5는 지난달부터 최대 600만 원을 할인에 들어갔지만 판매량은 늘지 않고 있다. 2월과 4월에 이어 지난달, 이달에도 가동을 멈춘 울산공장 생산라인이 앞으로는 더 짧은 주기로 멈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동조합과 갈등까지 겪을 처지에 놓였다. 올해 현대차 노조는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하며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 상여금 900%와 최장 64세 정년 연장, 주 4.5일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기아 노조도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인 점을 근거로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가 노조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비용 부담 가중은 불가피해진다. 사측이 노조와의 첫 교섭 자리에서 “이미 손익 감소와 판매 재고 증가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위기 상황을 강조한 이유다.
현대차·기아는 위기 속에서도 미국 현지 공장 생산 확대, 국내 투자 지속 등 다각적인 돌파 전략을 모색 중이다. 다만 전략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노사 협력이 필수적이다. 정부에게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부터 세제 지원, 친환경차 보급 확대 등의 적극적인 산업 지원 정책이 요구된다. 노사도 임단협 이견을 빠르게 좁히면서 6년간 무분규 타결 기록을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곧 국가 제조업 전반의 위기”라는 업계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