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기업에 이례적 회동 요청
MRO 등 조선협력 논의 전망

한미 통상협상의 물밑 전략지형에 국내 조선업계가 중심에 섰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16일 제주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비공개로 단독 면담을 갖는다. 이례적으로 미국 측이 먼저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며 국내 조선업이 통상 외교의 핵심 ‘협상 카드’로 급부상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15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두 조선사 대표단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리어 대표와 별도로 회동할 예정이다. 한화오션은 김희철 대표가, HD현대중공업은 이상균 대표 또는 노진율 대표가 참석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율 중이다. 이외 HD현대중공업을 계열사로 둔 HD현대의 정기선 수석부회장 역시 만남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만남에서는 상선 및 군함 건조, 유지·보수·정비(MRO) 등 조선 분야 전반에서의 한미 간 협력 방안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미 해군 함정 사업에서의 공동 진출, 기술 이전, 생산 파트너십 등 실질적 협력 구도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업계는 이 회동이 같은 날 예정된 그리어 대표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간 한미 고위급 통상 협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면담의 구체적 내용이 양국의 관세 협상이나 방산·조선 연계 산업 협의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번 만남의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온 ‘미국 조선업 재건’ 전략이 있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중국의 해상 패권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 강국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라며 한국 조선소와의 실질적인 파트너십 확대를 예고해왔다.
국내 조선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HD현대는 지난달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잉걸스(HII)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미국 함정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8월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호, 11월에는 급유함 ‘유콘’호를 수주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같은 해 12월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 인수를 완료하며 북미 진출을 본격화했다.
또 지난달 30일에는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이 방한해 HD현대 울산 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잇달아 찾았다. 당시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등 각 그룹 조선부문 최고경영진들이 총출동해 자사의 기술력과 협력 의지를 다졌다.
업계 관계자는 “그리어 대표가 통상 장관 회의 기간 중 국내 기업들과 이례적으로 직접 면담을 요청한 것은 조선 산업이 통상 정책의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한국 조선업이 한미 경제안보 연대의 핵심 접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