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겨냥한 사업지도 재편 본격화

삼성전자가 14일 유럽 최도 공조기기 제조사인 독일 플랙트그룹을 2조3787억 원에 인수한 것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닌 이재용 회장이 직접 설계한 ‘넥스트 삼성’ 생태계가 보다 구체화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가전, 모바일 중심의 기존 삼각축을 넘어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인프라를 아우르는 입체적인 사업지도 구축을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이번 인수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닌 ‘전략적 재구성’을 위한 빅픽처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 사의 오디오 사업부를 3억 5000만 달러(약 5000억 원)에 품었다. 차량 전장, 프리미엄 사운드까지 이어지는 하만의 확장은 스마트카 생태계를 겨냥한 움직임이었다.
여기에 플랙트 인수를 통해 삼성은 스마트홈·스마트카·스마트팩토리·데이터센트 등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공조 솔루션을 확보했다. 가정과 산업 현장,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공기와 온도’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공조는 에너지 효율과 탄소 저감, 스마트 환경 제어라는 세 가지 키워드 모두와 맞닿아 있는 미래 산업의 필수 인프라다.
공조기기는 AI, 로봇,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스마트홈 등 거의 모든 차세대 기술과도 연관이 있다. 적절한 온도와 습도, 공기 질을 유지하는 시스템은 사람은 물론 기계의 성능과 내구성 유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생성형 AI 확산과 함께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수요는 고성능 공조장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가전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한 성장 전략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이재용 시대가 본격화 한 후, 사업의 ‘결’을 바꾸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다. 하만 인수가 대표적이다. 오랜 사법 리스크로 하만 이후 인수합병(M&A)가 지지부진했만 지난해부터 ‘M&A 2.0’이 본격화된 분위기다. 하만을 축으로 한 전장·오디오 강화, 로봇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투자, 영국 AI 기업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 프랑스 의료AI 스타트업 ‘소니오’ 인수 등은 모두 그 연장선이다.
이번 플랙트 인수로 이재용 회장의 ‘AI 생태계 퍼즐’은 보다 정교한 그림을 그리게 됐다. 스마트홈에서는 삼성의 냉장고·에어컨·TV·스마트폰 등이, 스마트팩토리에서는 반도체 장비, 로봇, 공조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여기에 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기술이 덧붙여지며 삼성 고유의 통합 플랫폼이 완성되는 셈이다. 이를 위해 ‘삼성 생태계’ 구축에 필요한 소프트웨어·클라우드 기술 기업도 향후 인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이재용 회장이 언급해 온 ‘미래를 위한 투자’가 구체적인 성과물로 이어지는 국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이 회장은 삼성 임원들에게 메시지를 통해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문제에 직면했다”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플랙트 이전 삼성전자의 ‘마지막 조단위 M&A’였던 하만은 전장사업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가치를 증명했다. 인수 첫 해인 2017년 하만의 영업이익은 600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조3000억 원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재계 관계자는 “플랙트 인수는 단순한 해외 기업 매입이 아니라, 이 회장이 직접 설계한 새로운 삼성의 생태계를 완성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AI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입체적 구조가 구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