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美 관세 장벽…K배터리 ESS 전략 ‘빨간불’

미·중 관세 협상으로 미국 내 중국산 배터리 가격 경쟁력 회복할 듯
韓 현지 생산능력 부족과 IRA 조기 폐기 추진으로 이중 부담 직면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면서 관세 장벽을 틈타 북미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공략하려던 K배터리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기업들의 실적 버팀목이었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 축소 가능성까지 겹치며 이중 부담에 직면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중은 고위급 무역협상을 통해 서로 부과한 상호관세를 90일간 대폭 낮추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대중 관세를 145%에서 30%, 중국은 125%에서 10%로 각각 인하하는 것이 골자다.

통상 불확실성은 일정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지만 미국이 세운 관세 장벽을 발판 삼아 중국이 장악한 북미 ESS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려던 배터리 업계의 계획에는 제동이 걸렸다. 고율 상호관세를 포함해 중국산 ESS 배터리에 부과되던 최대 156%의 관세가 단순 계산으로만 37.5%(기존 7.5%·상호관세 30%)까지 낮아지기 때문이다.

중국산 ESS 배터리는 이 정도 관세로도 미국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블룸버그NEF 등에 따르면 중국산 ESS 배터리 가격은 현지 기준 킬로와트시(kWh)당 80달러 수준이다. 관세와 물류비 등을 더해도 미국 내 유통 가격은 100달러 내외에 불과하다. 같은 조건에서 한국산 배터리(출고가 약 100달러)는 미국 현지에서 110달러 수준이다.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IRA의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등을 받으면 가격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문제는 국내 기업들의 생산능력이 아직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공장의 유휴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2분기부터 배터리 생산에 들어간다.

미국에 단독 공장이 없는 삼성SDI는 관세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현재는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고, 관세에 대해선 고객사와 협의 중이다. 아직 일감을 수주하지 못한 SK온은 조지아 공장의 라인 전환을 검토하는 단계다.

중국 기업이 추가적인 덤핑 전략에 나선다면 국내 기업들의 대응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올라 휴즈 로 모션 리서치 총괄은 “중국은 기술 내재화와 저렴한 소재 덕분에 150% 이상의 관세도 감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기업들의 ‘버팀목’이던 IRA의 존속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최근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공화당 의원들은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를 내년 말까지 폐지하고, AMPC는 2030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해 폐지 시점을 2033년 초에서 2031년 말로 앞당기는 내용의 수정 법안을 발표했다.

IRA 수혜를 받은 주가 대부분 공화당 지역이고 지역 경제와 고용 창출 등을 고려하면 법안의 전면 폐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세제 혜택 축소 자체가 기업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다. 한국투자증권은 모듈 기준 AMPC가 45달러에서 40달러로 축소되면 내년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이익은 16.4% 감소하고, 삼성SDI의 적자 폭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과 보조금 축소라는 이중 압박에 놓인 배터리 업계는 생존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율 관세를 부과했을 때보다 국내 기업들의 반사이익은 줄어들 수 있지만 미국이 중국산 배터리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도록 두진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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