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애초 계획했던 10조 원에서 2조 원 늘어난 규모다. 산불 등 대규모 재해·재난 대응에 3조 원 이상 투입하고, 통상·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에 4조 원 이상,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에 4조 원 이상 투입할 방침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필수 추경안을 발표했다.
추경은 본예산과 마찬가지로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가 심의·의결하는 절차를 밟는다. 최 부총리는 “추경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면서 “최대한 빠른 시간 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의 초당적 협조와 처리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국회 심의 기간 등을 고려하면 이달 내 추경 통과를 낙관할 수는 없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35조 원 슈퍼 추경안을 제시해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그동안 추경 편성 요구가 빗발쳤다는 점에서, 정부가 추경 골격을 확정하고 신속 집행을 다짐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 영남권 산불로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에 내수 부진 또한 심각한 상황이어서 추경 편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정 마중물을 퍼부어 경기를 떠받쳐야 한다는 요구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탄핵 정국으로 관세 전쟁 이전부터 기진맥진했던 한국 경제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넉 달 연속 경기 침체 위험을 경고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달 들어서는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경고 수위를 더 높였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전망치인 1.5%에서 1.7%로 끌어올리려면 추경이 15조~20조 원 규모로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미국발 관세 태풍이 공포를 키우고 있다. 세계 경제를 동반 침체의 늪에 빠뜨릴 위험이 크다. 한국의 양대 수출 대상국인 미국과 중국의 관세·환율 전쟁은 우리 수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씨티은행과 JP모건은 미·중 관세 전쟁이 지속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이 0.8~0.9%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자칫 새우 신세가 될 수 있다. 유탄을 피하는 게 당면과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다음 주에는 한국과의 (무역) 협상이 있다”며 “(협상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이 또한 국가적 부담이다. 정부는 금융시장 불안부터 가라앉히고, 관세 공포가 실물경제로 전염되는 것을 막는 데 총력전을 펴야 한다.
기왕에 추경을 편성하기로 했다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대선이 변수다. 국회가 ‘표’를 의식해 퍼주기 경쟁에 나서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지난해 나라살림 적자 규모가 100조 원을 돌파했다. 재정 여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대선 블랙홀에 빠지면 어떤 난맥상이 전개될지 모른다. 속도가 관건이다. 5000만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누가, 어느 당이 나라 곳간을 더 허물지 못해 안달하는지 감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