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술유출 범죄, “지나치다” 할 만큼 엄벌해야

입력 2024-03-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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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어제 지식재산·기술 침해범죄 등에 대한 강화된 양형기준을 발표했다. 국가 핵심기술의 국외 유출 범죄는 최대 18년이 선고된다. 일반적 산업기술 유출에 대해선 국외는 15년을, 국내는 9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개발비가 피해 기준으로 인정되는 등의 기준 보완도 있다.

비밀유지에 특별한 의무가 있는 자의 범위도 확대됐다. 계약관계 등에 따라 영업비밀이나 산업기술 등을 비밀로서 유지할 의무가 있는 자인 경우가 추가됐다. 감경인자로 인정하는 것은 유출 정보가 반환·폐기돼 불법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낮은 경우로 제한했다.

대한민국의 일선 법정은 지금도 허술한 양형기준을 핑계로 국가 미래를 좀먹는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기 일쑤다. 전기가 마련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대법원은 집행유예 참작 사유에서 ‘형사처벌 전력 없음’을 제외했다. 초범이란 이유로 풀려나는 일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또한 반갑다. 첨단기술을 빼돌리는 범죄에 초범 아닌 이가 얼마나 되겠나. 세상 물정을 아는 이들이 모두 코웃음을 칠 비현실적 규정으로 그러잖아도 느슨한 법제를 우습게 만든 허물이 여간 크지 않다. 이런 구멍이 더 없는지 세밀히 챙길 일이다.

반도체 기술은 국가전략자산이다. 세계 주요국은 친소 관계를 떠나 국가 대항전을 벌이고 있다. 국부·국운이 걸리고, 일자리가 좌우되니 다른 선택지가 없다. 미국은 글로벌 지형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한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10∼30%에서 2025년 70%로 높이는 반도체 굴기를 기도한다. 일본도 대만과 손잡고 반도체 르네상스 부활을 꿈꾸고 있다. 공존 혹은 조화가 불가능한 매머드 청사진들이다. 막대한 보조금 정책도 마다치 않는다. 과거의 통상 반칙이 이젠 ‘뉴노멀’이다.

기술유출 차단 노력이 필사적 수준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미국, 대만 등은 때론 간첩죄로 다스린다. 최대 사형을 선고할 수도 있다. 일본은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기술 유출 방지 대책을 요구키로 했다고 한다. 우리 사법부의 양형기준 강화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여러 박자 늦은 조치라는 아쉬움이 있다. 처벌 강도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약하다.

메모리반도체 초격차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은 산업기술 해외 유출의 핵심 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9년 14건 중 3건에 불과했던 반도체 분야 적발 건수는 지난해 전체 23건 중 15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국회는 입법적 지원의 길을 찾고, 사법부는 더 고민해야 한다. 우리 독자 기술을 지킬 정보·수사기관 책무가 무거운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산업기술 552건이 해외로 새어 나갔다. 피해 규모는 1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이 정도다. 사람들의 눈에 잡히지 않은 완전범죄를 더해 총체적 손실 규모를 구하면 그 얼마나 될지 상상하기도 겁난다. 이런 범죄는 독버섯이나 진배없다. “지나치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엄벌에 처해야 토양의 독기가 그나마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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