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자존심 높은 프랑스서 수상…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어떤 내용?

입력 2023-11-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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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역사' 제주 4ㆍ3 다룬 소설로 수상
밀란 쿤데라ㆍ움베르토 에코도 받은 세계적 권위 문학상
"꿈과 현실 병치하는 문체로 비극 역사 어루만져"

▲ 작가 한강이 9일(현지시간)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뒤 현지 출판사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가 한강이 제주 4ㆍ3을 다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메디치상을 받았다. 한국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일(현지시간) 한강은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은 직후 현지 출판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에 낸 소설로 상을 받게 돼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메디치상은 페미나상, 공쿠르상, 르노도상과 함께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1958년에 제정된 메디치상은 신선하고 실험적인 작품에 수여하는 문학상이다.

메디치 외국문학상의 주요 수상자로는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폴 오스터, 오르한 파무크 등이 있다. 한강은 2017년 '희랍어 시간'으로도 같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진 못했다. 이후 6년 만에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이래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흰'이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제주 4ㆍ3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어떤 내용?

'작별하지 않는다'는 8월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출판사 그라세(Grasset)에서 'Impossibles adieux'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번역은 최경란ㆍ피에르 비지우(Pierre Bisiou)가 맡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이 책에 대해 "첫 페이지에서부터 꿈과 현실 사이의 연속체를 독특하고 신빙성 있는 정신적 공간을 창조해내고 있다"고 평했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 '작별하지 않는다' 中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와 '인선', '정심'이라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경하는 광주 5ㆍ18 소재로 소설을 쓴 작가이고, 다큐멘터리 감독인 인선은 베트남전 한국군 성폭력 사건을 다뤄 주목받았다. 정심은 인선의 어머니로 제주 4ㆍ3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직장에서 만나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낸 경하와 인선은 정심의 도움을 받아 제주 4ㆍ3을 영상화하는 데 의기투합한다. 이 소설은 세 여성의 발걸음을 통해 비극의 역사로 희생된 자들을 애도하고, 남은 자들을 치유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경하는 소설 속 한강의 분신인 셈이다.

▲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표지 (문학동네)

허희 문학평론가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강 작가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역사를 소설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꿈과 현실을 병치하는 특유의 문체로 비극의 역사를 어루만진다"며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 그대로 비극적 역사를 우리가 작별하지 않고, 잊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표명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ㆍ3을 소재로 한 소설이 해외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데 대해 허 평론가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당한 경험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유럽의 경우에는 홀로코스트가 있다. 제주 4ㆍ3이 한국의 특수한 맥락에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국가 폭력이라고 하는 범주 안에서 다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 평론가는 "문학적 자존심이 높은 프랑스에서 한강 작가가 수상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그만큼 한국문학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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