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무하는 '노OO족'…도 넘는 ‘약자 혐오’ [이슈크래커]

입력 2023-05-09 15:51수정 2023-05-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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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 카페가 등장해 누리꾼들이 치열한 갑론을박에 나섰습니다.

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노시니어존’이라는 안내 문구를 적고 영업 중인 카페의 사진이 게재됐는데요. 공개된 사진 속 카페의 출입문에는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 제한’의 부연 설명까지 적혀 있습니다. 한쪽에는 ‘안내견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60세 이상 노년층 고객의 입장은 막고 있는 겁니다.

해당 사진을 찍어 올린 누리꾼은 “한적한 주택가의 딱히 앉을 곳도 마땅찮은 한 칸짜리 커피숍”이라며 “무슨 사정인진 몰라도 부모님이 지나가다 보실까 봐 무섭다”고 적었습니다.

이 사진이 올라온 날은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에 공분의 목소리도 커졌는데요. 1000개에 달하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달리며 공론이 벌어졌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 같다” 등 업주 측을 옹호하는 반응도 나왔으나, 다수의 누리꾼은 어르신의 출입을 막는 행위가 “혐오”라고 지적하고 있는데요. 한 누리꾼은 “차별에 이유를 물어선 안 된다. 차별을 내세워서 지키려고 하는 건 결국 자기 권리일 뿐”이라며 “저 동네 어르신들이 전부 진상이라 영업에 방해가 될 정도라고 해도 그건 개별적으로 거부하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이 같은 갑론을박이 새삼스럽진 않습니다. 어르신들의 출입을 막는 노시니어존, 아이들의 입장을 제한하는 노키즈존 등 ‘노○○존’과 관련해서는 ‘영업상 자유’라는 의견과 ‘인권 침해’라는 주장이 매번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죠.

▲(출처=용혜인 의원 페이스북)

노키즈존, 전국 500개 이상…“양육자·어린이 거부하는 사회 바꿔야”

길거리에서는 심심찮게 ‘노키즈존’이나 ‘유아 및 아동 동반 입장을 제한한다’는 문구가 적힌 카페, 식당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업에 방해가 되는 아이들의 행동이나 소음을 막겠다는 취지로 상업지구의 카페, 음식점 등에서 시작된 노키즈존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확산했는데요.

최근에는 노키즈존을 제주에서 금지하는 조례 제정이 추진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7일 제주도의회에 따르면 송창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주도 아동출입제한업소(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이 11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안전위원회에서 심사될 예정입니다. 이 조례는 노키즈존 지정 금지에 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인권 차별행위를 근절한다는 데 목적을 두죠.

제주는 관광지라는 특성 때문에 노키즈존 업체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제주연구원에 따르면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되는 전국 노키즈존은 총 542곳인데, 이 중 78곳이 제주에 있어 전국 노키즈존의 14.4%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이달 4일 생후 23개월 된 아들을 안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 등장해 “공공시설부터 ‘노키즈존’을 없애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용 의원은 이날 “‘인스타 핫플’이라 불리는 카페와 식당, 심지어는 공공이 운영하는 도서관조차 노키즈존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키즈존이 아닌 ‘퍼스트 키즈존’”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공공시설부터 노키즈존을 없애나가자. 공공시설조차 합리적 이유 없이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대표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다. 국가 차원의 공공시설 어린이 접근성에 대한 촘촘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는데요.

용 의원은 “우리는 조금 더 빠르고 편리한 일상을 위해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해도 괜찮다는 생각에 길들여졌다”며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빠르고 능숙하고 성숙한 사람들만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느리고 서툴고 미숙해도 괜찮은 사회다. 세계 최하위의 출생률을 극복하려면 양육자와 어린이를 거부하는 사회부터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용 의원의 지적처럼, 점차 확산하는 노키즈존과 이에 대한 찬성 여론은 세계 최하위권으로 떨어진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과 상충하는 부분입니다. 정부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부터 16년간 약 280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 수치까지 기록했죠.

합계출산율은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하는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한국은 2018년을 기점으로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졌고, 하락을 거듭하다 지난해 역대 최저 수치까지 기록했죠.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년째 가장 낮은 수치기도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난무하는 ‘노ㅇㅇ존’…사회 전반에 깔린 ‘약자 혐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노키즈존에 대해 차별행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인권위는 “모든 아동 또는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가 사업주나 다른 이용자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며, 무례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용자가 아동 또는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에만 국한되는 것 또한 아니다”라며 “아동 및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의 식당 이용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일부의 사례를 객관적, 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화한 것에 해당한다”고 밝혔는데요. 노키즈존을 설정한 식당 주인에게는 해당 조치 철회를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노키즈존은 빠른 속도로 확산했습니다. 오히려 나이, 직업 등에 근거해 일부 성인의 입장을 제한한 업체도 등장하면서 눈길을 끌었죠.

2021년에는 ‘노중년존’이 등장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서울 소재의 한 캠핑장이 40대 이상의 이용을 제한한 건데요. 해당 캠핑장은 공지사항을 통해 “캠핑장은 다중이용시설로 방음에 취약한 데다 숙박을 조건으로 하는 곳이라 고성방가, 과음으로 인한 문제 등 주변에 엄청난 피해 우려가 있는 경우를 사전 차단함과 동시에 커플, 여성 전용 캠핑장으로 전체 콘셉트를 꾸몄다”며 “커플일지라도 가족 외에는 40대 이상 연인 등에게 적합하지 않아 예약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즉 40대 이상의 이용객은 다른 이용객의 불편을 야기할 수 있으며, 캠핑장의 콘셉트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입장을 제한하겠다는 겁니다. 당시 누리꾼들은 “노키즈존에 이어 노중년존이라니”, “차별이 일상”, “운영자의 자유”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이 밖에도 중학생의 출입을 막은 스터디카페나 특정 대학교의 정규직 교수들을 대상으로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카페 겸 술집 등 다수의 ‘노○○존’이 등장해 눈길을 끌어왔습니다.

이 같은 현상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약자 혐오’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배려받아야 할 약자인 아동이나 노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시선이 ‘노○○존’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는 거죠.

일각에서는 업주의 상황과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 추세라면 여성, 남성, 학생 등의 출입이 금지되는 카페나 식당까지 나타날 거라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척성은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노○○존의 대표 주자 격인 노키즈존 사례를 더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저출산 문제로 고심 중인 일본은 최근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는 등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방문자는 공공시설에 우선 입장하면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죠.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건데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항상 어린이나 젊은이의 시점에서, 어린이나 젊은이의 최선의 이익을 제일로 생각하는, 어린이 중심 사회를 실현해 가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국은 대영박물관에서 5세 미만의 아이와 보호자가 패스트 트랙으로 입장할 수 있고, 싱가포르에서는 공항 택시 승강장에서 임산부나 작은 아이가 있는 사람이 우선 승차할 수 있습니다.

저출산을 넘어 초저출산 국가로 접어든 한국 역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에서 이 노력을 체감하긴 쉽지 않습니다. 노키즈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고, 노키즈존은 여전히 건재하죠.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노키즈존에 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71%에 달했습니다. 반면 ‘어떤 이유로든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응답자는 17%에 그쳤죠.

노키즈존뿐 아니라 노중년존, 노시니어존 등으로 혐오의 장은 점차 늘어만 가는 상황. 손님을 가려 받는 경향이 확산하는 현상에 대해 사회 전반적인 고찰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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