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클리닝 업’ 현실판?…주가조작 사태 전말 살펴봤더니 [이슈크래커]

입력 2023-04-28 16:34수정 2023-04-2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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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2495.81)보다 15.98포인트(0.64%) 상승한 2511.79에 거래를 시작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38.0원)보다 1.0원 뛴 1339.0원에 출발해 장중 1340원대를 넘어섰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가 증권가를 강타했습니다.

24일 코스피 상장사 5곳(삼천리,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세방, 다올투자증권)과 코스닥 상장사 3곳(하림지주, 다우데이타, 선광)은 하한가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이후 이 8개 종목은 최대 4거래일 연속 하한가로 직행하다가 오늘(28일)에서야 하한가 행진을 멈췄는데요.

이들 종목은 SG증권이 대량 매도를 했다는 데 공통점을 둡니다. SG증권은 24일 하루 동안 하림지주 191만2287주, 다올투자증권 61만6762주, 다우데이타 33만8115주, 세방 12만1925주, 삼천리 1만3691주, 대성홀딩스 1만1909주, 서울가스 7639주, 선광 4298주를 매도했는데요. 그 이면에서 주가 조작 세력의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던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검찰은 주가 조작 세력으로 의심되는 10명의 출국을 금지했고, 금융당국도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죠.

여기에 임창정 등 유명 연예인들도 주가 조작 사태에 연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온갖 추측이 쏟아져 나오면서 증권가에서도 각종 ‘찌라시’(정보지)가 나도는 상황입니다.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SG증권발 주가 조작 사태, 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일대, 증권가 모습. (연합뉴스)

고소득층이 주 타깃…불법 통정 매매, CFD 활용

JTBC 보도에 따르면 주가 폭락의 배경에는 수년간 걸친 집단적 주가 조작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쯤부터 주가 조작 세력이 짜고 각자의 계좌에서 주식을 사고파는 불법 ‘통정(通情)매매’ 방식으로 8개 종목의 주가를 야금야금 올렸다는 건데요. 통정거래는 시세조종 유형 중 하나로, 매수자와 매도자가 미리 가격과 시간을 정해놓고 주식을 거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주가 조작 의심 세력은 전문직, 연예인 등 고소득직에 수익을 내주겠다면서 접근했습니다. 이들은 주가 조작 과정에서 수익을 일부 지급하면서 신규 투자자를 끌어들였고, 투자자 명의 휴대전화를 원격 조종하면서 시세를 움직였습니다. 그러던 중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서자 물량을 급하게 매도해 주가를 하락시켰고, 이후 매도세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폭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관련 투자자만 1000명이 넘고, 여기엔 회사 청소부도 포함됐다고 하는데요. 우연히 듣게 된 내부자 거래 정보로 주식판에 뛰어든 미화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JTBC 드라마 ‘클리닝 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 과정에서 차액결제거래(CFD)가 활용됐다는 의심이 퍼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CFD는 투자자가 주식을 실제로 갖고 있지 않더라도 거래가 가능한 장외 파생상품입니다. 기초자산의 진입가격과 청산가격 간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방식인데요. 주식을 사지 않더라도 주가 변동만으로 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최대 2.5배 차입(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며, 정해진 증거금률을 유지하지 못하면 반대매매를 통해 강제 청산됩니다. 증권사는 창구 역할을 하면서 수수료를 얻죠.

CFD는 거래 구조상 투자 주체가 노출되지 않아 주가 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악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투자 주체는 외국계 증권사로 잡혀 수급 착시 현상을 부른다는 비판도 나오죠. 국내 투자자의 주문을 받은 국내 증권사가 외국계 증권사에 매매를 위탁하는 방식이기에 외국인에 대한 거래로 분류된다는 겁니다.

이번 사태의 발생지라고 할 수 있는 SG증권은 고객으로부터 위탁받은 매매 주문을 실행했을 뿐이라며, 이번 사태와 관련해 규제당국의 현장 조사도 받은 적 없고 모든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수 겸 배우 임창정. (연합뉴스)

관련 투자자 1000명 이상인데…전말은 왜 지금 드러났나

당초 CFD 거래는 고위험 투자인 만큼 전문투자자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 요건이 완화되면서 CFD 시장이 급성장했죠. 전문투자자 수는 2019년 3300명에서 불과 2년 만인 2021년 2만4365명으로 급증했고, 연간 거래금액도 2019년 8조3000억 원에서 2021년 70조 원 규모로 대폭 성장했습니다.

금융당국은 이번 주가 조작 의심 세력들의 행위를 수년간 적발해내지 못했는데요. 이번 사건이 빠르게 드러나지 않았던 건 과거 주가 조작 사례와 달리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주가를 올리고, 다단계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등 치밀한 방법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도 내부 직원의 배신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죠.

임창정의 주가 조작 가담 의혹 보도가 나오기 이전, 한 누리꾼은 임창정과 관련한 유튜브 영상에 “형 주식 괜찮냐”는 ‘예언 댓글’을 달면서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 그는 임창정에 대한 보도가 나온 뒤에는 “임창정이 물린 것 맞고, 2인자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 다 폭로하고 던져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임창정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아닌 주가 조작에 가담한 인물이라며, 이번 주가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라덕연 모 투자자문 대표와 그가 긴밀한 관계라고도 주장했죠. 자신이 피해자임을 호소한 임창정과는 반대되는 주장이 나온 겁니다. 임창정이 단순한 피해자일지, 혹은 일당의 주가 조작 행위에 가담한 정황이 있는지는 추후 금융당국의 조사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당국은 주가 조작 세력의 통정거래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남부지검은 이번 사태 관련 의심자 10명을 출국 금지 조치했죠. 금융위원회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사건을 넘겨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입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주단 협약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SG증권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과 검찰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대처하고 있다”면서 “거래소와 금감원에 다른 시장교란 요인이 있을지 모르니 면밀하게 대처하자고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은 이날 오전 주가 폭락 사태와 연루된 일당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습니다. H투자컨설팅 업체의 서울 강남구 사무실과 관계자들 명의로 된 업체 등이 대상이었는데요. 금융위는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압수물을 분석한 뒤 관계자들을 조사할 예정입니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감원-증권업계 CEO 시장현안 소통회의에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CFD 규제 강화 ·주가 조작 경제사범 처벌 강화 목소리도

급락했던 종목들은 오늘(28일) 5거래일 만에 일제히 반등하면서 상승 마감했습니다.

28일 삼천리는 전일 대비 22.89% 상승한 15만30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나흘 연속 하한가를 찍었던 대성홀딩스도 전일 대비 8.79% 상승한 3만4050원에 마감했고요. 서울가스 (13.49%), 다우데이타 (5.34%), 하림지주 (2.97%), 세방 (11.07%), 다올투자증권 (10.43%), 선광(2.10%)도 상승 마감을 기록했습니다. 이 같은 반등은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반등에 따른 주가 급등 기회를 노리고 반대 매수세가 유입되는 거죠. 다만, 다시 세력의 물량이 나오면서 물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개인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번 사태에서 CFD가 거래 주체를 감춘 ‘장막’으로 활용된 만큼, 금융위의 책임론도 대두됐습니다. CFD가 시장에서 급성장하는데도 제도 마련에 소홀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을 크게 완화해 위험을 키웠다는 지적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8일 오전 미래에셋증권 본사에서 열린 ‘퇴직연금 서비스 혁신을 위한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상 징후에 대한 당국의 인지가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어떤 종목에 상승이나 하락이 있다고 해서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다룰 수는 없다”며 “활동력 있는 시장의 움직임을 위법의 시각으로 볼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특정 종목에 대한 상승과 하락을 단순히 잠재적 위법으로 취급할 순 없다는 건데요. 이 원장은 “지난해 6월부터 불공정거래 주요 위법 대응에 대한 수단으로 여러 보완을 해왔고 인력과 시스템을 확충·보완해왔다”고 부연했습니다.

한편, 금감원은 오늘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함용일 부원장 주재로 국내 35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현안 소통 회의를 개최해 레버리지 투자 관련 시장 리스크 관리에 협조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금감원은 “신용융자, CFD 등과 관련한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는 반대 매매가 발생할 경우 시장 변동성 확대 등 증권 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투자 권유시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한편, CFD 기초 자산의 위험 수준에 따라 리스크 관리를 차등화하는 등 증권사 스스로도 리스크 확산 방지에 힘써 달라”고 밝혔습니다. CFD 관련 과도한 고객 유치 행위도 최대한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전달했죠.

CFD 계좌에서 발생한 반대매매가 이번 사태의 배경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증권사들은 CFD에 대해 신규 가입과 매매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26일 삼성증권은 CFD 신규 매매 거래를 정지했고, 27일엔 국내 및 해외주식 CFD 서비스 신규 가입을 정지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도 다음 달 1일부터 CFD 신규매매를 중단할 방침입니다. CFD 계좌의 잔고 청산은 가능하죠. 그러나 증권사들이 최근까지 CFD 관련 고객 유치 경쟁을 활발히 벌여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뒤늦은 대처라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무더기 하한가’에서 시작된 주가 조작 의혹. 금융당국은 우선 주가 조작 의혹 세력이 실질적으로 조작 행위를 했는지 증거를 찾는 데 집중할 방침인데요. 금융당국의 면밀한 모니터링 감시 체계를 주문하는 목소리와 함께 주가 조작 세력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연일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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