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치솟는 물가에 드러난 서방의 모순

입력 2022-07-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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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국제경제부 기자

전 세계 물가 상승세가 매섭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경기침체를, 개발도상국의 ‘줄도산’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서방국가다.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할 당시만 해도 서방은 단호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월 말 “자유 세계가 러시아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 사람(블라디미르 푸틴)은 권좌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없다”며 초강경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치솟는 물가는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서방의 조바심은 커지기 시작했다. 러시아발 에너지 전쟁에 유럽에서는 올겨울 난방도 못 하는 나라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치솟는 물가에 자국 내 여론이 들끓자 서방은 ‘원칙론’에서 ‘현실론’으로 방향키를 전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 초기 초강경 발언을 늘어놓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푸틴을 축출할 생각이 없다”며 2개월여 만에 정반대 입장을 밝혔고, 극심한 에너지 대란을 겪는 서방은 자신들이 부과한 대러 제재에 계속해서 예외조항을 만들며 러시아에 유리한 형세를 만들어주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 이전의 영토를 되찾을 때까지 싸우겠다”며 자국군의 사기를 북돋고 있지만, 서방은 젤렌스키의 이 같은 의지에 부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실론’이라는 명목하에 우크라이나에 일부 영토 양보를 토대로 한 협상의 필요성도 거론된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영토는 찢겨나가고 인구의 약 20%에 달하는 국민이 피란민이 된 우크라이나로서는 모욕적인 제안일 수밖에 없다.

치솟는 물가에 서방의 모순이 드러난 부분은 또 있다. 바로 기후변화 영역이다. 주요 7개국(G7)은 지난달 말 정상회담에서 에너지 공급난에 대처한다는 이유로 화석연료 투자 중단 약속을 철회하고 가스 프로젝트에 대해 공공 투자를 늘리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고 외쳤던 것과는 대조적 행보다.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는 석탄 발전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당장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만큼 고물가와 에너지 대란이 극심한 데 따른 절박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원칙을 저버린 급조된 현실론은 결국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도, 기후 변화 대응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메랑이 돼 유럽을 할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better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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