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에지(edge) 시대, 반도체 생태계 재편을 위한 유럽의 도전

입력 2022-06-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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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1, 2차 산업혁명 시기, 당시의 신사들은 변화와 유행을 좇아 동역학(動力學)을 공부하였다. 이들은 동역학 원리를 이해하고, 사교계에서 논쟁하는 것이 하나의 덕목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근대라는 격동의 시대를 맞아, 동역학 원리 정도 이해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란 풍조가 있었던 것이다. 2016년 제46회 다보스 포럼이 ‘4차 산업혁명의 이해(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라는 주제로 개최되고 난 이후 우리 사회 풍조도 이러했다. 기술혁명에 의해 변화하는 우리 삶에 적응하기 위해 인공지능, 로봇공학, 빅데이터, 메타버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클라우드 컴퓨팅 등 다양한 미래 기술용어와 개념을 습득해야 했다. 또한 코딩을 초등학습 단계부터 배워야 한다는 열풍이 불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현재가 보인다. 현시대 신사와 숙녀, 지성인들은 대부분 동역학 원리를 고민하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이나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즉 기술의 도약으로 인해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일정 시점이 되면 이는 사회와 생활에 스며들어 익숙한 일상의 단편이 된다. 현재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에지(edge)를 통해 우리 생활 전반의 편리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이란 사용자나 데이터의 위치에서 수행되는 컴퓨팅 방식을 뜻한다. 인터넷, 모바일 시대를 이어 펼쳐질 에지 시대에는 정보기술(IT) 인프라에서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많은 서버와 사용자 연결망 접속점(node)을 연결하는 행위를 통해 스마트 사회를 구현하게 된다. 에지 컴퓨팅 자체는 분산 컴퓨팅 패러다임의 일종으로 이미 수십 년 전 등장하였으나, 데이터와 네트워크 광폭의 시대를 맞아 초연결 사회를 구현하는 기술의 도구로써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에지는 정보와 일상이 하나가 되는(실은 순식간에 연산되어) 영역에서 자율주행 운행을 가능하게 하고, 스마트 시티를 가능케 한다. 소위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맥락을 통해 우리에게 연결되며, 일상생활 반경의 장소와 기기들이 정보와 연결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 이 모든 연결의 접점에 반도체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에지 시대에는 수많은 정보통신기기의 비약적 발전을 통해 노드 간 연결이 폭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 자동차, 소비자 가전제품 및 산업체의 노드 간 접속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에지 반도체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예측된다. 반도체는 경제안보의 핵심기술이며 인공지능(AI), 로봇, AR 등 4차 산업혁명 내 필수 요소이다. 미·중 패권 갈등,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저성장 시기를 맞아, 주요국들은 경제의 효율성 대신 글로벌 공급망 안보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의 한 중심에 반도체가 자리 잡고 있다. 산업의 전환이라는 민감한 시기를 거치고 있는 현재, 최근의 반도체 쇼티지(부족현상)는 강력한 시그널이 되었다. 최근 글로벌 칩 부족은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렸다. 자동차 공급, 의료 기기 등 주요 산업에서 공급 부족을 야기했으며, 일정 산업군에 대규모 공장 폐쇄가 일어났다. 글로벌 시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매진했던 초일류 기업들조차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공급망의 안정성을 강조한다. 반도체와 같은 국가 기간산업 공급망을 관리하기 위해, 주요국들은 국내 혹은 신뢰 가능한 국가 간 소부장 클러스트를 형성하거나, ‘한미 반도체 동맹’과 같은 기술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정이 밀집한 아시아, 반도체 설계 등 유관 기술을 집적한 미국과 달리 유럽은 반도체 시장경쟁력이 약한 편이다. 유럽은 전 세계 반도체 수요 중 약 20%를 점하고 있으나, 생산은 10%대에 그치고 있다. 최근 일련의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유럽연합(EU)은 2022년 2월 유럽반도체법안(Chips Act)을 발의, ‘유럽반도체이니셔티브(Chips for Europe Initiative)’를 채택하였다. 이를 통해 EU는 역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공급망의 탄력성을 보장하며 외부 의존성을 줄여 나아갈 계획은 제시하였다. 즉 유럽반도체법은 EU의 기술주권을 위한 핵심 단계로 강조되고 있다. 해당 이니셔티브에는 유럽이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을 역내 자급 수준인 20%로 늘리는 디지털 10년 목표를 담고 있다. 아울러 연구와 기술 리더십, 첨단 칩의 설계, 제조 및 패키징에서의 혁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구조 계획, 공급망 재편을 담고 있으며, 기술 부족 해결을 위한 인재양성 방안을 제시한다.

한국의 신정부 또한 연일 반도체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변화의 시기, 미래를 통찰할 프레임워크를 통한 정책 운용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도 세계적 반도체 생태계 변화에 발을 맞추어야 할 때다. 에지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술인재, 공학 육성도 중요하나, 기술을 사회에 적용할 때 어떤 분야에 우선할 것인지, 어떠한 사회 변화 혹은 부적응이 있을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융합형 인재양성 계획도 입안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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