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알콜'ㆍ'무알콜'…소비자는 헷갈린다

입력 2021-1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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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임신했다. 아무거나 잘 먹던 친구가 몸을 극진히 챙기기 시작했다. 오래 못 갔다. 술 생각이 난다며 고심 끝에 '논알콜 맥주'를 택했다. 그런데 논알콜 맥주여도 진짜 '술'일 수 있다는 경고에 결국 우유만 열심히 마시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역병이 창궐한 이래 '무알콜'을 표방한 저도주가 트렌드로 떠올랐지만 '비알콜', '제로', '논알콜', '무알콜' 등 헷갈리는 표기법 탓에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현행법상 표기법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술이 단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아야만 ‘무알코올(Alcohol free)’을 사용할 수 있다.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0.00', '하이트제로0.00' 처럼 알코올이 차지하는 비율이 아예 없다는 의미의 '0.00' 표기도 할 수 있다. 음료로 분류되는 이유다. 다만 청소년들의 모방 음주 방지를 위해 '성인용'은 함께 표시해야 한다.

나머지는 전부 소량이라도 알코올을 포함한다. '비알코올', '논알콜', '제로' 딱지가 붙은 '카스0.0', '칭따오 논알콜릭', '하이네켄 0.0' 등인데 표기로는 '0.0'이 가능하다. 소수점 둘째 단위 이하로 알코올을 포함해서다. 가령 '하이네켄 0.0'은 0.03%의 알코올이 들어 있다.

'제로'인 줄 알았는데 마시고 보니 취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건 번역 과정에서 마땅한 용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미권에서는 Non과 Free(아예 없는) 차이라 알코올 함유 여부가 명확하게 인지되지만, 문제의 'Non'이 국내에서는 '비알코올', '논알코올', '제로' 등 자유분방하게 옮겨진 것이다.

결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달 초 '식품 등의 표시기준' 법을 일부 개정해 고시했다. 비알코올 맥주일 경우 '알코올 1% 미만 함유' 문구를 바탕색과 구분해서 표시하라는 게 골자다.

그러나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옆에 같은 폰트 크기에, 다른 색깔로 1% 미만 알코올 함유라고 쓰는 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표시를 추가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시중에 관련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단기간에 시정 조치가 이뤄지긴 어려워 보인다. 맘 카페 등에서는 '진짜 무알콜 맥주 리스트' 등이 돌며 '알 권리' 실현 책임이 소비자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용어의 제대로 된 교통정리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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