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연금' 받는 LH 퇴직자들…감사도 조사도 '첩첩산중'

입력 2021-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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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택지 조성 사업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퇴직자들의 '노후 연금'으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받게 됐다. 정부는 늑장 수사에 나섰지만, 진상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회의원에 따르면 LH는 지난해 7월 22일 '개발 토지에 대한 정보를 이용한 부적절한 행위'라는 내부제보를 접수했다. 제보대로라면 지난달 LH 직원들 투기 의혹을 제보받고 이를 공론화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보다 반년 이상 일찍 투기 징후를 파악한 셈이다.

반년 전 투기 제보받고도 퇴직자라며 뭉갠 LH
제보자는 LH 퇴직자 A 씨의 이름을 특정하며 그가 "공사 재직 시 개발되는 토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 부인 혹은 지인 부인의 이름으로 토지를 구입했다"고 했다. 그는 퇴직자에게 이름을 빌려준 등기상 소유주까지 명시하며 서울과 인천, 충남 등을 투기처로 지목했다. 제보자는 A 씨에게 부인 이름을 빌려준 지인 역시 LH 퇴직자로 적시했다.

제보가 투기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LH는 내부감사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제보한 퇴직 직원과 관련된 사항은 규정에 따른 감사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사실관계 확인 등 조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이후 민변과 참여연대 폭로에서도 LH 퇴직자와 현직자의 광명ㆍ시흥신도시 투기 공모 혐의가 제기됐다. LH 현직 직원 12명과 함께 퇴직자 2명도 투기에 가담했다는 게 민변 등 주장이다. 투기에 가담한 현직자 역시 퇴직을 앞둔 간부급 직원이었다. 신도시ㆍ택지 조성 사업이 LH 직원들 노후 대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이유다. 부동산 업계에선 LH 퇴직자가 만든 부동산 법인에 현직 직원들이 출자, 법인 이름으로 개발 예정지를 사들인다는 의심까지 한다.

(연합뉴스)

정부, 퇴직자 빠진 '반수 조사'…처벌 법규 적용 쉽지 않아
퇴직자들이 관여된 투기 윤곽이 드러나고 있지만 진상 조사는 아직도 더디다.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들의 공공택지 투기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정부 합동조사단은 아직 현직자의 토지 거래 내역을 살피기도 바쁘다. 지난주 결과를 발표한 1차 조사에서도 국토교통부와 LH 현직자만 조사했다. 2차 조사도 공공택지 관련 지자체, 지방 공기업 현직자만 대상으로 삼고 있다. 퇴직자에겐 조사에 필요한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를 받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조사단이 관련자 '전수조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투기의 한 축인 퇴직자가 빠진 반쪽 조사인 셈이다.

퇴직자 조사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 몫으로 넘어갔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경찰은 지난주 투기 의혹을 받는 LH 현직 직원 13명의 주거지를 압수 수색을 했지만, 퇴직자 2명은 압수 수색 대상에서 제외했다. 현행법상으론 퇴직자들의 혐의를 특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투기 의혹 공직자 처벌 규정으로 제시하는 법률은 공공주택특별법과 부패방지권익위법에 규정된 업무상 미공개 정보 이용이다. 다만 이들 법률은 원칙적으로 현직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이 미공개 정보를 투기에 이용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앞으로 수사도 쉽지 않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도 투기 의혹을 받는 퇴직자 조사에 관해 "민간인이라 조사하기 위해서는 사전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토지거래 현황 속에 포착될 경우 추가적인 조사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민변과 참여연대 등은 공직자 토지 거래 전수대상에 퇴직자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정부도 강제 수사 여부를 놓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강제 수사가 개시되면 개인정보 활용 동의 없이도 토지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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