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가족 빼고 등기만 열람…예고된 정부 합조단의 '셀프조사' 한계

입력 2021-03-11 16:50수정 2021-03-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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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지 9일 만에 내부 조사 결과를 내놨다. 추가 의혹을 포착했지만 차명 거래나 미등기 거래 등 전형적인 투기 수법은 조사 대상에서 배제됐다. 속도에 치중한 '반쪽 조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정부합동조사단 1차 조사 결과 LH 직원 20명이 3기 신도시ㆍ대형 택지지구(경기 광명ㆍ시흥,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ㆍ과천 과천ㆍ안산 장상)와 그 인근에서 최근 10년 동안 토지를 매입한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처음 투기 의혹을 제기한 지 1주일 여만이다.

정부는 민변 등이 투기 의혹을 제기한 직후 국무총리실 중심으로 조사단을 꾸렸다. 이번 발표는 국토부와 LH 임직원 중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1만4319명을 조사한 결과다. 정부는 부동산 관련 공부(등기부, 토지ㆍ건축물 대장 등 부동산 관련 공문서)와 부동산 거래 내역 등을 근거로 직원들의 투기 의심 거래를 조사했다.

등기부 이름만 들여다보는 '페이퍼 조사'…시민단체 "아주 기초적 사실관계 정리 수준"

이번 조사를 두고 시민사회 안에선 '졸속 조사'라고 비판이 일고 있다. 부동산 공부에 기반한 조사로는 실명 투기 행위밖에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실명으로 신도시 예정지 토지를 사는 '이례적인' 투기 행위는 포착할 수 있지만 차명이나 무등기 등 전형적인 투기 수법은 오히려 놓칠 수밖에 없다.

조사가 표면적인 거래를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투기 의혹 직원들을 직접 대면조사 하지도 않았다. 앞선 1ㆍ2기 신도시 투기 때 조사 당국이 자금 흐름ㆍ차명 거래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던 건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3차 정례 브리핑에서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1차 전수조사' 결과를 직접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기 의혹 조사를 검찰이 아닌 정부 부처가 주도하다 보니 수사력 한계도 드러났다.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사람에 한해서만 부동산 거래 내역 등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차 조사에선 29명이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미뤄 이번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지금 같은 방식으론 앞으로 진행될 지방자치단체, 지방 공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조사 거부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정세균 국무총리는 조사 실효성에 관한 논란에 "이것을 수사에 처음부터 맡겼으면 아마 지금 기초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속도'를 강조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정부 발표 직후 "아주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정부가 투기의심 사례를 20건으로 판단한 구체적인 근거와 기준, 투기 의심사례에 포함하지 않은 국토부ㆍLH 직원들의 토지 거래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고 논평했다.

투기 의심 직원 20명 중 11명이 변창흠 재임 때 토지 매입

이제 수사의 공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중심이 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으로 넘어갔다. 정부는 투기 의심 LH 직원 20명을 합수본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당초 정부 내에서 맡기로 했던 국토부와 LHㆍ지자체ㆍ지방 공기업 직원 가족에 대한 조사도 합수본으로 넘어갔다. 수사권이 없는 정부 조사단에서 가족 조사까지 맡으면 일일이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다가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일각에선 1ㆍ2기 신도시 투기 조사를 주도했던 검찰 대신 국수본이 수사를 이끌면서 수사 역량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런 우려가 커지자 국수본과 대검찰청은 "송치 사건 수사 중 검사 수사 개시 가능 범죄를 발견하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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