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책 대책 발표 이후 주택시장 급냉
『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이를 어쩌나. 주택 매매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이러다가 진짜 거래절벽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10.24가계부채 대책 때문이다. 8.2부동산 대책으로 가뜩이나 냉기가 가득한데 여기다가 강력한 대출억제책으로 짓눌렀으니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서울시가 매일 집계하는 주택 매매량을 보면 냉각되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10월들어 27일 현재 매매량은 6922건으로 하루 평균 거래 건수로 환산할 경우 전월보다 48.6% 줄었다. 거의 반 토막이 난 셈이다.
8.2 대책 영향을 받은 9월 매매량은 32.9%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가계부채 대책이 나온 뒤에는 감소폭이 더욱 커졌다는 얘기다.
전국 거래내용은 구체적인 통계가 없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냉각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8.2 대책 영향을 받기 시작했던 9월 전국 주택 매매 건수가 전월 대비 12.7% 줄었다는 것을 보면 대충 감이 잡힌다.
가계부채 대책 발표 이후 주택시장 냉각 강도가 세졌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 형국이 돼 버린 것이다.
여기다가 그동안 분양된 엄청난 아파트 입주물량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올 판이어서 일부지역은 거래절벽 사태가 불가피할 것 같다.
이 뿐만 아니다. 금리인상 기류도 큰 문제다.
이런 사안들이 한꺼번에 터지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 주택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다.
8.2 대책으로 그냥 나둬도 자연적으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뭐가 급하다고 대출억제라는 고강도 냉매(冷媒)를 쏟아 부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8.2대책에다 포함시켜 한꺼번에 내 놓았더라면 충격이라도 좀 덜했텐데 말이다.
경기 부양을 한다고 호들갑을 떨 때는 언제고 이제는 온갖 규제를 동원해 박살을 내려고 덤비는 꼴이 여간 짜증스러운 게 아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저질로 놓은 일을 현 정부가 수습하는 입장이라지만 심사숙고 과정을 거쳐 정책 시행 여부를 판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상적인 경제 가동을 위해서는 전 정부가 부풀려 놓은 기형적인 주택시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 소득의 많은 부분이 거주비용으로 투입되는 구조에서는 소비부진→생산감소→일자리 부족→소득감소로 이어지는 경제 악순환 고리를 끊기 어렵다.
사실 전 최경환 부총리가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해준 덕에 큰 재미를 본 부류는 주택업체를 비롯한 몇몇 계층이고 대부분은 피해자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은 현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상황을 봐가면서 몰아쳐야지 이런 식으로 한꺼번에 규제 보따리를 풀어 젖히면 어쩌란 말인가. 아마 규제 무게에 짖눌려 그냥 질식하고 말지 모른다.
가계부채 대책은 시장 돌아가는 추이를 좀 지켜본 후 시동을 걸었어야 옳았다는 소리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할 게다.
주택 매매량 추이를 보면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앞에서 언급했 듯 가계부채 대책이 나온 뒤 서울 주택 매매량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지 않는가. 하루 평균 매매량이 8월 742건에서 9월 498건으로 줄었고 10월 들어서는 27일 현재 256건으로 감소 폭이 자꾸 커지는 추세다.
주택매매가 잘 안 된다는 것은 그만큼 주택 수요가 줄었다는 뜻이다. 풍성한 잠재수요 중에는 시장 분위기가 안 좋아 일단 관망세로 돌아선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책을 뜯어보면 실제 수요는 줄 수밖에 없다. 8.2 대책만 해도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데다 1순위 청약대상 제한, 전매 규제 등이 강화돼 가수요의 입지가 좁아졌다. 먹이감이 줄어 많은 가수요가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다 실수요 구매력까지 감퇴시키는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아 매매시장 침체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다. 부작용 또한 적지 않겠지만 왜곡된 주택시장 구조가 점차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문제는 이보다 더 강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거다. 입주 물량 공급과잉과 금리 인상 문제다.
공급 과잉은 이미 예견된 사안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이 고비다.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 예정물량은 37만9000 가구이고 내년에는 43만 가구다. 2년 동안 80만 가구가 넘는 새 아파트가 나온다. 입주물량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어 파급 강도가 좀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금리 영향은 전국적인 사안이다. 아직 단정하기 이르나 인상 기류가 강하다.
최근 시중은행 대출금리는 4%대를 넘어 5%대에 진입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KEB하나은행은 5년간 고정금리로 했다가 변동금리로 전환하는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3.74~4.96%에서3.827~5.047%로 올렸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은행도 덩달아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 기준 금리가 오르면 은행 대출금리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대출자의 자금부담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금리가 1% 포인트만 올라도 추가 부담액이 적지 않다. 보통 주택구입 대출금액이 3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연간 300만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월급이 오르지 않을 경우 대출금 이자 때문에 소비를 줄여야 한다.
이런 마당에 거래절벽 사태 등이 벌어져 집값이 폭락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정책 실패로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받기도 한다. 실제 그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업무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