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순환출자 고리 끊기에 따른 투자위축을 걱정한다

입력 2014-12-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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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교수·프리덤팩토리 대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가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20개나 줄었다. 순환출자 정리에 나서기 직전 2013년 12월에 30개이던 것이 2014년 12월 현재 10개로 축소됐다.

순환출자 해소는 대선 기간 중의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다. 문재인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는 물론이고 기존 순환출자도 끊어내겠다고 공약했다. 박근혜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겠다고 약속했고, 그것대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어서 시행 중이다. 새 법이 기존 순환출자의 해소를 요구하고 있지 않은데도 삼성그룹이 이처럼 기존 순환출자를,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끊어내는 데에는 이건희 회장 이후의 경영권 상속 등 여러 가지의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사회적 지탄을 받아온 문제를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국민에게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의지가 크게 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일모직, SDS 주식 등의 매각 등이 순환출자 고리 단절과 연관되어 있다. 그같은 노력의 절정은 삼성토탈 등 석유화학 계열사들과 삼성탈레스 등 방위산업 계열사들을 한화 그룹에 매각한 일이다. 그룹이 망할 지경도 아닌데 이렇게 여러 회사를 팔아치우는 것은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서 삼성그룹은 몸집을 줄이고 현금 보유를 늘렸으며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

필자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하며 순환출자 고리를 줄여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순환출자 고리가 줄어서 국민에게 좋은가 노동자들에게 좋은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점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국민과 노동자에게 좋으려면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장사를 잘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장사를 잘해서 근로자의 월급을 올려주고 투자를 늘려서 더 많은 청년들을 뽑아줘야 국민은 좋아진다. 그런데 순환출자 고리 해소는 그런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계열사까지 팔아야 하는 것이 순환출자 해소의 진면목이다. 새로운 투자에 대한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순환출자 해소의 유일한 장점은 지분관계가 투명해진다는 점이다. 여러 계열사가 순환출자로 얽히게 되면 지분소유 관계가 복잡해져서 외부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보기가 어려워진다. 같은 값이라면 지분 소유관계가 단순한 것이 본인들에게도 투자자들에게도 보기가 좋다. 하지만 그뿐이다. 보기에 좋다고 해서 투자가 느는 것도 아니고 기업의 성과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여년간 많은 기업이 정부가 하라는 대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는데 그 때문에 기업의 성과가 높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순환출자는 작은 돈으로 큰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방법이다. 나쁜 짓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대자동차가 부도 상태의 기아자동차를 인수해서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도 순환출자 덕분이었다. 그 당시 순환출자가 금지되어 있었다면 현대자동차가 기아차를 인수하기 위해 정몽구 회장의 개인 돈이 더 많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돈을 마련하자면 정 회장이 가지고 있던 현대자동차의 주식을 팔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이 불안해진다. 정몽구 회장 개인이 아니라 현대자동차가 회사 차원에서 인수했기 때문에 기아자동차의 새주인이 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순환출자가 형성되었다.

사정이 그렇기에 순환출자를 금지하게 되면 같은 사업을 하더라도 더 많은 현금이 필요해진다. 이미 이루어진 순환출자를 제대로 끊어내려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그룹의 경우처럼 계열사를 팔아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업에 왜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곤 한다. 순환출자는 작은 돈으로 큰 투자를 하는 방법인데 그것을 금지하면 투자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순환출자 금지법은 이미 만들어졌으니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두고두고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다른 일에서라도 이런 어리석음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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