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2013년 뉴욕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이토 시로이는 자신이 일하는 바에서 일본의 유명 방송인인 야마구치 노리유키를 몇 번 보았다. 그는 일자리에 관심 있으면 한번 연락하라고 말했다. 이후 이토는 몇 번 메일을 보냈고, 일본에 돌아와 로이터통신 인턴으로 있던 2015년 4월에 그와 만났다. 그들은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셨고 이토는 정신을 잃었다(이토는 야마구치가 약을 탔다고 주장하고 그는 부인한다). 야마구치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토를 자신의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이토는 야마구치를 고소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일본의 100년이 넘은 강간법은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다. 그래도 둘을 데려다준 택시 운전사의 증언 등으로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으나 상부의 지시로 무산되었다. 야마구치의 정치적 영향력이 배후에 있다고 충분히 의심할 상황이었다. 이후 일본 경시청으로 사건이 넘어가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이듬해 8월에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 결정이 났다. 굴복할 수 없었던 이토는 2017년 5월에 공개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성폭력 피해자가 공개 회견하는 건 일본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몇 개월 후에는 회고록 ‘블랙 박스’를 출간했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의 공격이 심했으나 그해 하반기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확산한 미투 운동은 힘을 주었다. 그녀는 형사 소송에는 실패했지만, 야마구치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승소했다.
다큐멘터리 ‘블랙 박스 다이어리’는 2024년에 발표되었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고 2025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피해 당사자가 만든 영화라는 것일 테다. 더구나 그는 저널리스트다. 그래서 초기부터 (즉 다큐를 만들 생각을 하기 전부터) 기록에 충실했다. 예를 들어 담당 수사관과의 대화를 녹취했다. 그녀는 그게 없었으면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녀의 직업적 배경은 다큐에 크게 기여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일본 사회의 보수성에 놀랐다. 기자 회견 때 이토가 입은 셔츠의 첫 단추가 열려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녀를 ‘창녀’라고 욕한 사람이 있었다. 자서전이 나온 후에는 한 여자가 익명의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가 같은 여자라는 게 너무 부끄럽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나? 나는 아주 엄격히 자라서 이런 일을 피할 수 있다. 당신 말이 다 사실이라고 해도, 그 남자가 불쌍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 사건을 다룬 2018년 BBC 다큐를 보면(‘Japan’s Secret Shame’이란 제목인데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를 소개하는데, ‘여자가 남자랑 취하도록 술을 마시면 성행위에 동의한 것이다’에 학생의 11%가 그렇다고 답했고, ‘키스하면 성행위에 동의한 것이다’에는 63%가 그렇다고 답했다.
사실 우리나라도 몇십 년 전까지 그랬다. 뭐, 몇십 년 전까지 갈 것도 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어쨌든 잊고 살았던 과거의 정서를 잠시 떠올렸다. 물론 위 설문 조사가 거의 10년 전이기 때문에 일본도 지금은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이토의 투쟁 이후 일본의 성범죄 관련법이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토는 2024년의 한 인터뷰에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일본에도 미투 운동이 있지만 한국이나 중국보다 약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토는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외국 생활을 많이 해서일 것이다. 그녀의 외모와 옷차림도 왠지 일본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을 준다. 그의 다큐를 보면서 구태를 깨는 건 일종의 아웃사이더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새삼 생각했다.
이토가 책 ‘블랙 박스’를 쓸 때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거리두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큐를 위해 옛 일기나 기록물들을 들쳐 보면서 감정이 되살아났단다. 영화에는 트라우마가 드러나는 장면이 많다. 예를 들어 그녀가 현장(호텔 앞)에 갔을 때 잠시 숨을 제대로 못 쉰다. 나중에 지지자들 앞에서 이런 얘기도 한다. “벚꽃을 못 본 지 4년이 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친구들이 … 꽃구경 가자고 했지만 왠지 마음에 걸렸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벚꽃이 만개했을 때 그 사건이 일어난 걸 깨달았습니다. 그 뒤론 벚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승소한 후 차 안에서 그녀는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를 신나게 따라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