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자사주 소각’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500대 기업이 소각한 자사주 규모는 21조 원에 육박했으며, 삼성전자가 그 선봉에 서서 시장의 주주 환원 트렌드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시총 상위 500대 기업 중 47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총 80개 기업이 20조9955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단일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전체 소각액의 14.5%에 달하는 3조487억 원어치를 태우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해운 업황 개선 속에 주주 환원에 박차를 가한 HMM이 2조1432억 원 규모를 소각하며 뒤를 이었고,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주주 마음잡기에 나선 고려아연도 1조8156억 원어치를 소각하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메리츠금융지주(1조5517억 원), KB금융(1조200억 원) 등 금융권의 적극적인 소각 행보도 두드러졌다.
소각의 전 단계인 자사주 취득 규모 역시 역대급이다. 지난해 자사주를 직접 사들인 기업은 102곳으로, 총 취득 금액은 21조 원에 달했다. 여기서도 삼성전자의 화력이 돋보였다. 삼성전자는 8조1884억 원 규모를 매입하며 ‘주주 환원 1번지’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금융권의 ‘밸류업’ 의지도 매입 수치에서 증명됐다. HMM(2조 1432억 원)에 이어 KB금융(1조4800억 원), 메리츠금융지주(1조3173억 원), 신한지주(1조2500억 원) 등이 조 단위 매입을 기록하며, 향후 추가 소각 가능성을 열어뒀다.
반면 자사주를 시장에 내다 팔거나 넘긴 ‘처분’ 규모는 108개사, 3조1273억 원으로 집계됐다. 눈여겨볼 대목은 처분 목적이다. 전체 처분액의 64.7%인 2조245억 원이 임직원 보상을 위해 쓰였다.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스톡그랜트 등 보상 체계가 자사주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정착된 영향이다.
임직원 보상용 처분 규모가 가장 큰 곳은 현대차(5302억 원)였으며, 삼성전자(3429억 원)와 SK하이닉스(3076억 원) 등 반도체 투톱이 나란히 뒤를 이었다. 한편 롯데지주는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1477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롯데물산에 처분하는 등 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현재 자사주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신영증권(51.23%)으로 나타났다. 이어 부국증권(42.73%), 한샘(29.46%), SNT다이내믹스(28.94%) 순으로 조사됐다. 이들 기업은 향후 지배구조 개편이나 주주 환원 정책 변화에 따라 자사주 활용 방향이 시장의 주요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CEO스코어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사주를 활용하거나 소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당 가치 제고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