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일본제철의 정체…전통 제조 강국의 한계 드러나
성장 이후의 과제는 ‘이익의 질’과 재무 체력

한국과 미국, 일본 3개국 주요 기업들의 최근 실적을 비교하면 단순한 경기 사이클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기업 전략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 기업들은 외형 성장에 성공했지만 수익성에서는 아직 갈 길이 남았고, 미국 기업들은 고수익 구조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일본 기업들은 전통 제조업 강점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성장과 이익 모두에서 정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25년 3분기 누적 기준으로 한·미·일 3개국 7개 업종 대표기업의 경영실적을 분석한 결과, 성장성·수익성·안정성 지표 전반에서 세 나라의 경쟁력은 명확히 갈렸다.
성장성 측면에서 한국 기업들은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 대표기업 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14.0%로 미국(7.8%), 일본(1.4%)을 크게 웃돌았다. 반도체·방산·제약·바이오 등 전략 산업에서 고성장이 이어진 덕분이다.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회복 국면을 이끌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AI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 확대에 힘입어 두 자릿수 후반의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며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삼성전자역시 업황 회복에 따른 실적 반등 흐름은 분명했다.
방산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이 글로벌 방위비 확대의 수혜를 가장 직접적으로 흡수했다. 납기 준수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수출 확대가 매출과 이익을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제약·바이오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를 축으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다만 성장의 성격은 과거와 달라졌다. 철강과 정유처럼 전통 산업은 여전히 부진한 반면, 방산·바이오·첨단 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성장이 집중되는 ‘선별 성장’ 양상이 뚜렷하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성장 기반이 점차 고부가 산업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익성에서는 미국 기업들의 우위가 더욱 선명했다. 미국 대표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17.9%로 한국과 일본을 크게 앞섰다. 반도체와 인터넷서비스, 제약·바이오가 고수익 구조를 주도했다.
반도체에서는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AI 가속기 수요를 장악하며 50%를 웃도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이는 한국과 일본 반도체 기업들과의 수익성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텔은 구조조정과 투자 부담으로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인터넷서비스에서는 알파벳과 메타 플랫폼스가 글로벌 광고 시장을 장악하며 3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네이버와 카카오는 커머스·콘텐츠·핀테크 등으로 사업을 분산한 구조 탓에 성장성과 수익성이 상쇄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보고서는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지배력과 플랫폼 기반 수익 구조를 바탕으로 가격 결정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수익성의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단순히 매출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 내 지위를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시사점이 크다. 외형 성장이 일정 수준에 이른 이후에는 ‘얼마나 파느냐’보다 ‘얼마나 남기느냐’가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지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자동차와 철강, 정유 등 전통 제조업에서 여전히 글로벌 상위권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자동차는 매출 증가율 둔화와 함께 이익률이 하락했고, 철강은 글로벌 공급 과잉과 중국발 저가 공세의 직격탄을 맞았다.
보고서는 일본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효율화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점을 정체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방산과 제약·바이오에서 일부 회복 흐름이 나타났지만 정책적 제약과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성장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는 평가다.
부채비율을 보면 국가별 전략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 대표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80%대 중반으로 가장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미국은 200%를 웃돌며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있고, 일본은 그 중간 수준이다.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재무 전략을 유지하며 위기 대응력을 중시하는 반면, 미국 기업들은 높은 수익성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차입과 투자를 병행하는 구조로 해석된다. 이는 단기 안정성과 중장기 성장 전략 간의 선택 차이를 보여준다.
이번 분석은 단순한 일부 기업 비교가 아니라, 한·미·일 3개국을 대표하는 주요 산업군을 폭넓게 아우른 것이 특징이다. 경총은 반도체·철강·자동차·방산·제약·바이오·인터넷서비스·정유 등 7개 업종에서 국가별 매출 상위 기업을 중심으로 대표기업을 선정했다.
한국 기업으로는 반도체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철강에서는 POSCO홀딩스와 현대제철이 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기아, 방산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이 대표기업으로 선정됐다. 제약·바이오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인터넷서비스는 네이버와 카카오, 정유는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가 포함됐다.
미국에서는 반도체에 엔비디아와 인텔, 철강에 뉴코어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 자동차에 포드와 GM이 포함됐다. 방산은 RTX와 록히드 마틴, 제약·바이오는 존슨앤존슨과 머크, 인터넷서비스는 알파벳과 메타 플랫폼스, 정유는 엑슨모빌과 셰브론이 대표기업으로 선정됐다.
일본에서는 철강에 일본제철과 JFE홀딩스, 자동차에 도요타와 혼다, 방산에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 제약·바이오에 다케다제약과 오츠카홀딩스, 정유에 에네오스홀딩스와 이데미츠코산이 포함됐다. 반도체와 인터넷서비스는 일본 내에서 글로벌 비교가 가능한 기업이 없어 분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보고서는 한국 기업들이 성장의 속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수익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고도화할 수 있을지가 향후 경쟁력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경총은 향후 경영환경에 대해서는 신중한 전망을 내놨다. 경총 하상우 경제조사본부장은 “미국 관세 충격에도 불구하고 올해 우리 대표기업들이 반도체, 방산, 제약·바이오 중심으로 선전했지만, 일부 업종의 어려움은 여전했다”며 “내년에는 미국 관세 인상으로 인한 영향이 본격화되고 글로벌 경기 둔화로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세제 개선, 규제 완화 같은 정책적 지원이 더욱 과감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