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이 아니라 메이크업 이야기입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굽자"는 말을 합창하며 하루의 메이크업 무드를 정하는 모습이 포착되는데요. 자신의 퍼스널 컬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할 밈(meme)이기도 하죠. '가을 웜톤'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색상, 빵이나 초콜릿처럼 따뜻한 베이지, 브라운, 누드 톤 컬러를 사용해 메이크업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다 얼자", "다 익자", "다 피(우)자" 등 각기 다른 톤과 매력의 메이크업을 추구하는 이들이 '다 굽자' 유행에 동참하면서 일종의 '팀'까지 형성됐는데요. 재미있는 건, 이 흐름이 우리가 알던 퍼스널 컬러 공식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다 굽자' 유행은 퍼스널 컬러에서 비롯됐습니다. 국내에서 퍼스널 컬러는 단순 뷰티 트렌드를 넘어 자신을 설명하는 일종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퍼스널 컬러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자신의 피부 톤을 노란색, 분홍색으로 진단하는가 하면 이를 또 봄·여름·가을·겨울 등 사계절 특징에 맞게 분류하고, 명도와 채도에 따라 라이트·뮤트·브라이트·딥으로 쪼개는 PCCS 색체계(일본 색채 연구소 체계)까지 등장하는 등 구체적으로 세분화됐습니다.
자신의 피부 컬러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흐름이 유행하다 보니 10만~20만 원 대의 고가 오프라인 진단 서비스도 흥행했고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인공지능(AI) 진단 서비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나를 객관화하고 특정 유형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도 퍼스널 컬러 확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뷰티 업계에서는 퍼스널 컬러가 자신을 소개하는 MBTI처럼 통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폭발적인 유행을 지나 퍼스널 컬러는 어느덧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로도 자리잡았는데요. '다 굽자' 흐름도 이와 연결됩니다. 가을 웜톤이라면 말랑말랑한 빵, 부드러운 베이지색 머플러, 달콤한 초콜릿을 연상케 하는 브라운 계열의 색상을 중심으로 메이크업을 완성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다른 퍼스널 컬러 보유자들도 질 수 없었죠. 차가운 보랏빛, 대비감이 도드라지는 겨울 쿨톤은 "다 얼자", 청량하면서도 차분한 색상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알려진 여름 쿨톤은 "다 맑자", 발랄하고 생기 있는 이미지의 봄 웜톤은 "다 피(우)자" 등의 구호(?)를 사용하며 저마다 매력을 자랑하기 급급합니다.

'다 굽자'·'다 얼자' 흐름이 단순 유행어에서 그치지 않고 빠르게 확산된 데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향이 컸습니다.
밈 확산 속도가 빠른 X를 중심으로는 "오늘의 '다 굽자' 메이크업", "Team '다 얼자' 탑승합니다"라며 자신의 메이크업, 또 화장품 사진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흐름은 브랜드 입장에서 놓치기 아까운 '자발적 바이럴'입니다. 퓌(fwee), 네이밍(Naming), 피브(FEEV) 등 Z세대 사이 인기가 높은 뷰티 브랜드들은 빠르게 공식 X 계정에서 '다 굽자'·'다 얼자' 키워드를 활용하고 나섰는데요. 네티즌들의 트렌드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 특징이죠.
일례로 퓌는 "퓌 글로스도 team 대항전 출전한다"며 봄 웜톤, 여름 쿨톤, 가을 웜톤, 겨울 쿨톤이 혹할 립 글로스 발색 사진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3만 회가 훌쩍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네이밍은 최근 출시한 블러쉬 4컬러를 일명 '다 굽자 블러셔 4종'으로 명명했는데요. 체험단까지 '다굽자 클럽'으로 모집해 트렌드에 진심임을 보여줬죠. 미미박스의 색조 브랜드 아임 미미도 '다 굽자', '다 얼자' 키워드를 내세워 이벤트를 진행하고요.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CNP는 "(보습) 다 채우자"(?)라며 색조가 아닌 기초 화장품을 들이밀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X에는 이들 구호와 함께 자신의 메이크업이나 화장품 사진을 인증하는 놀이 문화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흐름이 퍼스널 컬러의 '정답'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겨울 쿨톤도, 여름 뮤트도, 심지어 자신이 어떤 톤인지 모르는 사람도 그냥 원하는 분위기대로 굽거나 얼린 메이크업을 선보이는 식입니다.
과거 퍼스널 컬러가 "나는 쿨톤이니 웜톤 색상을 쓰면 안 돼" 같은 진단과 제약의 영역이었다면, 요즘의 '다 굽자' 트렌드는 취향과 기분에 따라 연출 방법을 선택하는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이 같은 모습은 Z세대의 소비 방식과도 맞물립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색만 쓰라'는 규칙(?)보다 오늘의 기분·룩·상황에 따라 무드를 선택하는 데 더 익숙한데요. 웜톤 립을 바르고 쿨톤 치크를 섞거나, 평소 잘 쓰지 않던 텍스처를 조합해 '다 굽자' 버전을 새롭게 만들어보는 식입니다. 톤이 나를 규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시도해보는 옵션 하나로 재해석되는 순간이죠.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의 뷰티 시장에도 변화를 예고합니다. 특정 톤 전용 제품이라며 타겟을 한정 짓기보다는 '쿨톤이 웜한 무드를 내고 싶을 때 쓰는 아이템' 등 크로스오버 포인트가 통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퍼스널 컬러는 정답이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도구가 된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