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투자경고 지정, 국내 투자심리 급랭

미국이 12월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예상보다 비둘기파적 메시지를 내놨음에도 코스피는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며 결국 약세로 돌아섰다. 장 초반에는 4160선을 회복하며 강세 흐름을 보였지만 네 마녀의 날(선물·옵션 동시 만기) 변동성과 대형주의 투자경고 지정, 환율 재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지수 상단이 제한됐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4.38포인트(0.59%) 내린 4110.62로 마감했다. 지수는 28.32포인트(0.68%) 오른 4163.32에서 출발해 FOMC 안도감에 힘입어 장 초반 오름세를 이어갔지만 오전 11시 전후부터 차익실현 매물이 본격적으로 쏟아지며 상승폭을 대부분 반납했다. 한때 4103.20까지 밀리며 하락 전환한 뒤 낙폭을 조금 줄였으나 투자심리 회복에는 이르지 못했다.
수급에서도 기관의 매물이 지수를 눌렀다. 이날 기관은 7712억 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3462억 원과 4039억 원을 순매수했다. 네 마녀의 날을 앞두고 기관이 포지션 조정을 강화한 것이 지수 변동성 확대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간밤 뉴욕증시는 3대 지수 모두 상승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1.05% 올랐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0.67%, 0.33% 상승했다.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3.50~3.75%로 25bp 인하했다. 다만 결정문에서는 “추가 조정의 정도와 시기를 고려함에 있어”라는 매파적 표현이 유지되며 금리 인하 사이클의 속도 조절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기자회견에서 반전됐다. 파월 의장은 회견에서 시장 일각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일축하며 “현 금리는 중립금리 범위의 상단에 있다”고 발언해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에 미국 시장은 비둘기파 발언에 더 무게를 두며 반등했지만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이어진 장에서 모두 약세로 전환했다.
국내 증시가 파월 효과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 배경에는 미국 기술주의 불안도 자리한다. 전날 오라클이 발표한 2026회계연도 2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고 자본지출 가이던스를 상향 조정하면서 ‘AI(인공지능) 산업 내 거품 우려’가 재부각됐다. 이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AI 수혜주를 중심으로 차익실현이 유입되며 투자심리가 흔들렸다.
지정학적 압력도 시장 불안을 키웠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 핵탑재 가능 B-52 폭격기 2대가 중·러 연합군사훈련 직후 일본 자위대 전투기와 함께 동해 상공을 비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대됐다”며 “이 여파로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고 국내 증시가 하락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지정학 리스크는 통상 단기 영향에 그쳤던 만큼 향후에는 외환시장의 변화가 더 중요한 변수”라고 진단했다.
이날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의 투자경고 지정도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한국거래소는 두 종목이 최근 1년간 각각 230%, 290% 급등하고 최근 15거래일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이유로 전날 투자경고 조치를 내렸다. ‘투자경고’는 거래소의 3단계 위험 등급 중 2단계로 신용·미수 매수 제한은 물론 매매거래 정지 가능성까지 있어 투자자들의 심리적 부담이 크다. 실적이 뒷받침되는 대형주가 규제 대상으로 묶이자 시장에서는 “상승장에서 과도한 제동”이라는 불만도 적지 않다.
이날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 대비 3.75% 하락한 56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고 SK스퀘어는 5.09% 떨어진 30만7500원에 마감했다. 현대로템(-4.17%)도 투자경고 여파로 약세를 나타냈다. SK하이닉스의 투자경고 해제 여부 첫 판단일은 오는 24일이다.
시가총액 상위주 전반에서도 약세 흐름이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0.65% 하락했고 현대차(-2.31%), HD현대중공업(-2.10%), 한화에어로스페이스(-2.06%) 등 주요 종목이 2%대 낙폭을 기록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1%대 상승세를 보였으며 두산에너빌리티(0.65%), KB금융(0.24%) 등은 강보합권에 머물렀다.
코스닥지수는 전장 대비 0.36포인트(0.04%) 내린 934.64로 마감했다. 장 초반에는 940선을 돌파해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오후 들어 차익실현이 유입되며 상승분을 반납했다. 기관이 362억 원 순매도한 반면 개인(492억 원)과 외국인(355억 원)이 매수세로 대응했다. 에코프로와 에프프로비엠은 각각 3%대 하락했고 에이비엘바이오 역시 약세였다.
환율도 지수에 부담 요인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6원 오른 1473원에 마감하며 다시 1470원대를 넘어섰다. 최근 원화 약세 흐름이 외국인 수급을 제약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정은·태윤선 KB증권 연구원은 “12월 FOMC가 예상보다 덜 매파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며 시장 전반에 안도감이 퍼졌지만 SK하이닉스·SK스퀘어 등 최근 지수를 견인하던 대형주들이 잇달아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되면서 투자심리가 빠르게 식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네 마녀의 날을 앞둔 변동성 확대, AI 거품 논란 재부각, 기관 매도 우위가 맞물리며 상승 동력이 제한됐다”며 “향후 연준의 추가 스탠스 변화, 환율 안정 여부, 반도체 대형주의 수급 회복이 단기 지수 흐름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