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푸짐해서 부끄러운 식탁

찢어진 구두창을 손에 쥐고 나타난 인터뷰이는 처음이었다. 정춘실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장은 제37회 아산상을 받게 돼 오랜만에 귀국했다. 그는 짧은 체류 일정에도 인터뷰에 응해줬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구두는 인터뷰에 오는 길에 밑창이 뜯어졌다.

수녀이자 간호사인 정 진료소장은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까지 3개국어를 한다. 케냐와 말라위에서 의료·구호 활동을 했고, 운전과 회계도 베테랑이다. 특이한 이력 덕분에 오전에 시작한 인터뷰가 점심시간까지 계속됐다.

인터뷰 일행은 중국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둘러앉았다. 한입거리 요리 3개와 면이 나오는 흔한 런치메뉴였다. 정 진료소장은 오랜 외국 생활로 한국 음식이 어색하다고 했다. 음식에 대한 한담을 이어가다가 2001년 말라위 대기근 얘기가 나왔다.

당시 말라위는 고위층의 비리로 구호물자도 잘 분배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식량을 나눠준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정 진료소장은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분유를 나눠줬다. 그가 “분유라도 줄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을 때쯤 코스에 포함된 고추잡채가 나왔다.

어느 날엔 깡마른 소년이 큰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와서 음식을 구걸했다. 자전거에 실린 짐은 굶어 죽은 아버지의 시신이었고, 소년은 아버지를 묻으러 가는 중이었다. 정 진료소장이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쥐여줬다”며 울먹이는 도중 깐쇼새우가 나왔다.

분유를 받으려 줄 서고,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면서도 그들은 배가 고팠을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차리고 잔반을 만드는 데 익숙한 것이 부끄러웠다. 오늘날 한국엔 ‘성인병 돼지파티’와 ‘도전 먹방’같은 말이 생겼다는 사실을 정 진료소장에게 들키지 않길 빌었다.

마침내 요리가 모두 나오고 식사를 짜장과 짬뽕 중 무엇으로 하겠냐는 질문이 제기됐다. 전식 누룽지도 다 먹지 못한 정 진료소장이 “지금까진 식사가 아니었어요?”라며 놀랐다. 정 진료소장이 한국 음식에 어색해진 것은, 맛 때문이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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