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싱가포르를 방문한다. 그들은 멀라이언과 마리나 베이 샌즈, 가든스 바이더 베이, 주얼 창이 같은 조형·건축물과 공간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싱가포르의 상징이 된 랜드마크들은 대부분 생긴 지 10~2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10년이 안 된 곳도 있다. 유산이 적다 보니 새로운 상징을 설계해 도시의 매력을 구축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싱가포르를 돌아보며 또 다른 특징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건축물이 많지 않지만 남아 있는 것에 대한 태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싱가포르는 보존구역이나 보존건물을 지정해 외관 유지, 재료와 색상 보존, 변경 허가 등의 엄격한 규제로 관리한다. 도시에 축적된 시간을 최대한 지키면서 건물의 용도는 현대적으로 변화를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길을 훔치는 신스틸러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생긴다.
얼마 전에는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찾았다. 10여 년 만에 돌아봐도 학창시절 봤던 풍경과 냄새, 소리가 그대로 떠올랐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상전벽해란 말이 어울릴 만큼 크게 달랐다.
도매시장을 제외하면 서울 어디서도 보기 힘들 만큼 크고 길게 형성됐던 시장은 왕복 6차선 도로가 됐고 상점 뒤를 감싸던 낮은 주택가는 10층 안팎의 상가 건물과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차지했다.
낙후한 주거·생활환경을 정비해야 할 필요에 의한 것이었겠지만 그 동네가 갖고 있던 표정이 통째로 사라진 아쉬움이 컸다.
지금 사는 곳도 비슷하다. 처음 이사 왔던 10여 년 전에는 아파트 단지를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골목길과 시장이 사라지고 아파트와 상가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네 산책에 흥미를 잃게 된 배경이다.
밀집한 아파트와 입주민의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한 상가로 가득 채워진 모습은 서울 동네의 표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지방으로 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비사업이나 개발은 필요하다. 더 나은 주거·생활환경과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해 낡은 주거지와 도시 인프라를 다듬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이 각 동네가 가진 시간,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싱가포르는 역사와 그것을 담은 문화유산이 많지 않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상징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우리는 이미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축물과 공간이 넘친다.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를 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미 충분한 자산을 가진 것이다.
크고 멋진 최신식의 건축·조형물은 얼마든 만들고 새로운 것으로 계속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그 흐름이 만든 풍경, 이야기는 아니다. 한번 사라지면 되살릴 수 없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남아 있는 것을 어떻게 더 빛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으면 하는 이유다. 그게 우리의 도시 경쟁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길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