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함인희의 우문현답] 추석 명절도 “움직이는 거야”

이화여대 명예교수/사회학

사회발전 따라 가족의식 큰폭변화
책임 얽매인 명절 신드롬에 ‘부담’
간소화추세 시대흐름 존중해 줘야

추석이 바로 코앞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옛 속담이 각 세대의 마음속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작년 추석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질문들로,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애는 언제 가질 거야? 요즘 취업준비는 잘 돼가? 성적은 잘 나오니? 너 얼마 버니? 등의 목록과 함께, 눈치 없이 무례한 질문을 했을 경우의 벌금 액수가 SNS를 타고 떠돌아다녔다.

올해는 일주일간 지속되는 황금연휴를 맞아 공항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릴 테고, 민족의 대이동 행렬은 추석 당일 가장 몰릴 전망이나 귀경 차량은 분산될 것이란 소식이다. 대신 이혼까지 불사하던 ‘며느리 명절 증후군’은 한때 미디어에 단골로 등장했건만 요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잠하다. 3년 전 성균관까지 나서서 추석 차례상 표준안을 시연하면서 기름진 음식 쓰는 건 예법이 아니니 ‘이젠 명절에 전을 부칠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도 종종 화제에 오르는 2000년 한 통신사의 TV 광고 카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보다 솔직하게는 결코 변하지 않길 바라는) 그 사랑도 속절없이 움직이거늘, 세상사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을 게다. 가족도 물론 예외가 아니어서 지금까지도 부단히 변화해왔듯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를 이어갈 것이다.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 가족실태조사만 보아도 ‘부부가 각자의 가족과 명절을 보내는 것에 동의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2020년 29.9%에서 2023년엔 35.1%로 증가했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는 입장은 같은 기간 중 45.7%에서 55.2%로 증가했다.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한다’는 생각은 60대 이상 연령층에선 10명 중 8~9명이 찬성을 표하지만 30대 이하 연령층에서는 찬성률이 10명 중 1명에도 못 미친다.

흥미로운 건 사회 변화에 대해서는 근대화든 산업화든 민주화든 정보화든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반면, 가족 변화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담은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옛날이 정말 좋았는데’ 과거를 향수어린 눈길로 추억하거나, ‘이대로 가다간 부모형제도 몰라보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일쑤다.

가족과 사회가 함께 변화하는 과정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사회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가족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때 ‘가족지체’가 발생하고, 거꾸로 가족은 이미 변모했는데 사회가 가족의 새로운 모습을 포용하지 못할 경우 ‘사회지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맞벌이 부부가 대세인데 그래도 일차 양육의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음은 가족지체의 실례요, 1인 가구와 비혈연가족 비율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복지 세금 의료정책 대부분이 ‘정상가족’에 기반하거나 직계 존비속 친화적임은 대표적 사회지체의 예일 것이다.

서구에도 ‘명절 신드롬’이란 현상이 있어, 명절이 다가올수록 우울증을 호소하며 전문 상담사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고 한다. 주위 사람은 모두 함께 모여 명절을 보낼 행복한 가족이 있건만, 자신만 함께할 가족도 반겨줄 고향도 없다는 소외감 상실감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우리네 명절 신드롬은 가족이 부과하는 책임과 의무가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게 다가와 훌훌 벗어나고픈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 주요인이라는 점에서 서구와는 다소 결이 다른 듯하다.

추석 차례상도 세월 따라 간소해지고 있고, 함께 모이는 가족 수도 해마다 줄고 있지만, 개인이든 가족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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