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에 신중한 이유

오건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

8월 28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행 2.5%로 동결했다. 이와 함께 2025년 성장률 전망을 기존 0.8%에서 0.9%로 상향 조정했다. 추가경정예산과 같은 부양책에 힘입어 성장률 전망이 개선됐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0.9%라는 숫자조차도 2009년 금융위기 당시의 성장률 수준(0.8%)과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경기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아울러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지속되고 있지만 금번 동결 결정에서도 나타나듯 통화 완화에는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외금리차·가계부채 함께 고려해야

지난해 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와 같이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들의 통화정책에서는 미국처럼 단순히 성장과 물가만을 고려해 금리를 결정하는 것보다 금융 안정과 같은 이외 요인들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정책 체계(Integrate Policy Framework)를 적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고용을 중심으로 한 성장률의 극대화와 소비자물가지수 안정을 바탕으로 통화 정책을 결정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비 2.0% 수준으로 한은의 목표치에 어느 정도 수렴돼 있으며, 성장률 전망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정 수준 상향 조정에도 불구하고 매우 부진하다. 만약 미국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한은은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합적 정책 체계하에서는 금융 안정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금융 안정에는 미국과의 금리차를 고려하는 대외적 요소와 대내적으로 국내 가계부채의 급증과 이와 동반되는 부동산 가격 불안, 두 가지가 담겨있다. 최근 고용 둔화 우려로 기준금리 인하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는 4.25~4.5%이다. 한국 기준금리가 2.5%인 점을 감안하면 약 2% 수준의 금리차를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은 보다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흘러가는 속성이 강한데,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보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국내에서 미국으로의 자본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여전히 2%가까운 기준금리 차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과 물가만을 감안하여 과감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데에는 자본 유출 가능성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가계 부채의 급격한 증가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상당 기간 저금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감 형성과 함께 부동산 시장을 재차 자극할 수 있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이후, 0%대 성장률 전망에 근거한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강화되자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름세를 나타냈고, 주택 담보 대출을 중심으로 가계 부채가 빠르게 증가했었다. 이후 6·27 대책으로 대변되는 강력한 대출 규제로 부동산 시장을 억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약한 국내 경제 성장만을 고려하여 적극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물가 목표치 안 … 금리인하 가능성도

그렇다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기대난망일까? 대외 금리차와 가계 부채라는 변수가 함께 고려되면서 한은의 통화정책 수행이 고차방정식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장과 물가는 기준금리 결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목표치인 2% 수준에 맞춰진 상태에서 약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금리 인하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언급했던 것과 같은 금융 안정 상황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이른 바 신중한 통화 정책 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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