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ㆍ국립창원대 교수
스타트업·대학 등 협력 플랫폼 도입
선진 사례 참고해 규제 개선 나서야

2026년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안은 35조 3,000억 원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로 확대될 예정이다. 국방 분야에서도 방위력 개선비로 20조 1,744억 원이 책정되어 첨단 무기 개발 등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문제는 예산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이 자원이 경제 발전과 국방력 강화라는 국가적 목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여하느냐에 있다. 정부의 주요 역할은 민간과 군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저수지(technology well)’를 넓히고, 그 기술이 다양한 산업과 군사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연결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과거 ‘민군통합(CMI, Civil-Military Integration)’은 민과 군을 구분해 기술을 이전 및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AI, 빅데이터, 자율주행, 양자컴퓨팅 등 민간 기술이 군사력 핵심이 되면서, 민과 군이 처음부터 함께 연구개발하는 ‘민군융합(MCF, Military-Civil Fusion)’ 개념이 보편화되고 있다. 즉, 민군 겸용(dual-use) 기술을 공동 기획 및 개발로 추진하는 생태계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델은 중복 투자를 줄이고, 민간 혁신의 속도가 군의 실전 요구에 바로 연결되는 장점이 있다.
미국은 국방혁신단(DIU)과 합동인공지능센터(JAIC) 등을 축으로 국방이 대학, 스타트업, 빅테크와 초기부터 개방적으로 협력하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신속계약(OTA)으로 시제품을 빠르게 도입했다. 이스라엘도 스타트업, 군, R&D 조직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상시 협력하고 상용기술(COTS)을 신속하게 맞춤 통합해, 예산이 크지 않아도 정밀, 원거리, 그리고 상시작전 능력을 군에 신속히 적용하며 효율성을 높였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로 민군융합을 전면 추진했지만 폐쇄적 조달과 관료적 장벽이 민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제약하는 문제점이 반복되고 있다. 인도 또한 국영 방산업체 중심 구조, 낮은 R&D 투자, 복잡한 규제로 혁신 속도가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개방형 생태계가 속도를 만든다는 점, 둘째, 민간이 이해할 수 있는 제도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민군겸용기술개발사업, 국방벤처센터 등 여러 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으나, 현실적으로 민군 협업과 개방형 혁신의 수준은 아직 제한적이다. 한국이 민군융합의 시대적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그간의 성과 위에 보다 구조적이고 실질적인 두 가지 방향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방위산업의 ‘개방형 혁신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방산기업이나 일부 협력사만이 참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가진 스타트업, 대학, 2·3차 공급망, 정비(MRO) 등 민간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와 조직이 보다 자유롭게 진입하고, 군과 함께 기획 및 설계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정보 교류를 활성화하고, 군의 실질적 수요와 민간의 기술 역량이 연결되는 협력 플랫폼이 갖춰져야 한다. 둘째, 민간도 이해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방위사업 절차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전문용어가 많아 민간기업과 신생기업, 학계가 자유롭게 참여하기 어렵다. 민군융합이 활성화되려면, 민간과 군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규정과 절차를 갖춰야 하며, 협업 구조의 유연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은 신속계약(OTA) 도입, 방산 절차의 표준화, 상용기술의 빠른 도입 경로 운영 등으로 민간 역량을 군의 요구에 신속히 접목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선진 사례를 참고해 기술, 인력,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도록 불필요한 규제와 관료 장벽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