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신정 체제에 도전하는 이란 영화

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신성한 나무의 씨앗’,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 2025년>

우리나라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었듯이, 2022년 9월에 쿠르드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되어 있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심장마비라고 발표했으나 주변 정황은 경찰의 폭행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이란 전역에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여성, 생명, 자유’라는 이름의 운동으로 확산했다. 이란 당국은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수개월 동안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배경으로 한다기보다 영화로 재현하려고 했다는 게 더 맞을지 모르겠다.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아버지는 공무원으로서 가부장적 정권을 상징하고, 두 딸은 저항하는 신여성을 상징하며, 어머니는 체제에 순응해 온 다수의 국민을 상징한다. 아미니를 상징하는 여성도 나온다. 대학생인 큰딸의 친구인데, 시위 현장에 있다가 경찰의 산탄총에 맞아 얼굴에 큰 부상을 입는다(그녀는 경찰에 체포된 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된다). 아버지와 여성들은 결국 충돌한다.

이렇게 말하면 정형화된 캐릭터에 도식적인 대립이 떠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전반부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물들의 도덕적 갈등이 치우치지 않게 묘사되었다. 아버지는 ‘수사 판사’로 막 승진했는데(판사로 가는 최종 단계이다) 검찰의 기소장을 무조건 통과시키라는 압박에 큰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딸들은 아버지의 보수적 가치관에 반발하지만, 그에 대한 사랑도 표현한다. 어머니는 안락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함께 남편에게 헌신적이지만, 의견 대립에도 불구하고 딸들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부상당한 딸 친구도 남편 몰래 치료해 준다.

어느날 침실 서랍에 둔 아버지의 권총이 사라지면서(승진할 때 총을 지급받았다)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나중에는 거의 액션 스릴러를 닮아간다. 총을 분실한 게 알려지면 자신의 20년 경력이 물거품이 될 뿐 아니라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아버지는 이제 단선적인 악인이 된다. 집안의 여성들을 가둬놓고 범인을 찾으려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총에 의해 몰락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2022년 시위 당시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해 SNS에 올린 동영상들이 사용되었다. 이것들이 영화에 무게감을 준다. 적나라한 폭력의 현장이 그대로 담겨있다. 스토리가 조금 뻔하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 영상을 만나면 정신이 드는 느낌이다. 위에 언급한 마지막 장면도 너무 장르 영화 같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다가 이어서 음악과 함께 그 영상이 나오니 숙연해졌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당국의 허락 없이 몰래 촬영되었다. 유심히 보면 도시(테헤란)에서는 실외 장면이 거의 없는 걸 알 수 있다. 몇 개 있는 것도 대부분 차 안에서 찍었다. 마지막에 사람 없는 시골에 가서야 제대로 실외 장면이 나온다.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는 이 영화를 만들 때 이미 두 번의 수감 경력이 있었다. 그는 자파르 파나히와 함께 이란의 대표적인 반체제 영화감독이다. 이 영화가 2024년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게 알려지고 나서 이란 법원은 그에게 8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그 형이 실제로 집행되기 직전에 그는 이란을 빠져나왔다. 추적당할 수 있는 전자 기기를 모두 버리고, 걸어서 산을 넘는 길고 고된 과정이었다고 한다.

한 외국의 평에 흥미 있는 게 있었다. 영국의 가디언지에 실린 것인데, 흠 하나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큰딸이 TV 뉴스를 보면서 “저거 다 거짓말”이라고 하자 아버지가 말한다. “아이고, 신이시여, 네가 어떻게 알아?” “이 나라에 살고 있잖아. 나도 눈이 있어.” “확실해? 적에게 속는 건 아니고?” 그러자 딸이 반문한다, “무슨 적?” 아버지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는다. 가디언의 그 평자는 이게 실제 상황이라면 당연히 대답했을 거라고 지적한다. 그렇다. 이란 정권의 적은 미국과 이스라엘인데 서구 관객의 심리를 고려하여 침묵한 것일 테다(그 글에는 딸의 반문이 “What foreign elements?”라고 되어 있는데, 필자가 본 영어 자막에는 “What enemy?”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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