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새 정부 ‘금융사고 엄정 처벌’ 경고...금감원, 가이드라인 제시 [구멍 뚫린 책무구조도]

4대 은행 현장컨설팅 결과 전산시스템ㆍ매뉴얼 미흡
“최소한의 규칙 준수 취지에서 바람직한 이행 방향 제시”

새 정부가 금융사고 책임 떠넘기기 관행을 뿌리 뽑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정작 이를 예방하기 위한 핵심 장치인 은행권 ‘책무구조도’는 현장에서 허술하게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책무구조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주요 시중은행이 시행 초기 혼선을 겪으며 금융권 전반의 제도 안착에도 경고음이 켜졌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모범사례를 통해 제도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있지만, 실효성 확보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의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책무구조도 현장컨설팅 결과 이들 은행 모두 임원의 관리의무별 전산시스템과 매뉴얼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책무구조도란 금융사 임원 개개인의 담당 업무에 따라 내부통제 책무를 배분해 적은 문서다. 지난해 7월 3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도입됐다.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크게 점검·조치·보고 단계로 나뉘는 ‘임원의 6대 관리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금융사고 발생 시 책무구조도에 따른 관리의무를 위반한 임원은 제재받을 수 있다.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이 입증되는 경우에는 감면받을 수 있다. 책무구조도는 올해 1월 금융지주·은행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4단계에 걸쳐 금융투자업자·보험사·여신전문금융회사·상호저축은행 등 업권별로 전면 시행된다.

금감원은 현장컨설팅을 통해 신탁부 소관 업무 관련 책무에 대한 자산관리(WM)부문 임원의 내부통제 등 관리의무 운영실태를 점검했다. 은행 자체적으로 마련한 임원별 관리의무 이행체계가 적정성을 갖췄는지, 책무구조도 시행 이후 실제 임원의 점검 이행 실적이 어떤지를 살폈다.

그 결과 4대 은행 중 3곳은 임원용 관리조치 매뉴얼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은행 대부분이 지점장·부장 등 부점장(직원) 관리조치 매뉴얼만 마련한 탓에 책임 주체가 아래로 내려와 ‘꼬리 자르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임원의 관리조치 활동의 73%가량이 ‘내부통제 기준 준수 여부 점검’에만 치우쳐 있다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형식적인 점검만 이뤄질 뿐 부여된 책무의 위반·미흡 사항에 대한 시정·개선 조치나 교육, 대표이사 보고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은행권 대상 설명회를 열어 책무구조도 운영실태 개선안과 모범사례를 제시했다. ‘점검 단계’에서 내부통제기준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잣대를 마련할 때 법규나 모범규준만 수동적으로 반영하기보다 민원, 금융사고, 감독당국의 지적을 적극 고려하는 등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보완할 것을 주문했다.

‘조치 단계’에서는 위반·미흡 사항에 대한 관리조치 활동을 임원용 매뉴얼에 반영하고 실질적인 관리 활동 수행을 독려해야 한다고 했다. 점검부터 관리, 시정·개선, 완결까지 전 과정의 이력 관리를 위해 전산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시스템에는 조치 활동 내용과 개선 계획 진행 상황, 피드백, 리스크 변화 등 노력 과정을 기록하고 조치 기일이 지나거나 반복된 위반사항은 경고 알람을 통해 안내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금감원은 은행이 임원의 소관 책무와 연계해 자체적인 연간 교육을 운영하고 우수 내부통제 수행자에 대한 포상휴가 등 인센티브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정 지배구조법이 제시하는 원칙을 바탕으로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내부통제 관리체계를 만드는 게 기본 방향”이라며 “(설명회에서는)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최소한의 규칙은 지켜달라는 취지에서 바람직한 이행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설명회는 ‘임원의 관리의무’를 중점으로 이뤄졌다. 앞서 금감원이 지난해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기간 컨설팅을 통해 ‘각 임원에게 책무를 제대로 배분했는지’를 확인한 데 이어 ‘책무와 관련해 임원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내부통제를 잘 관리했는지’를 살핀 것이다.

감독당국이 이처럼 모범사례 제시와 현장 점검을 통해 책무구조도의 제도 안착을 유도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리의무를 어디까지 이행해야 법적 제재를 최소화하거나 면제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여전히 추상적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새 정부가 금융사고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금융사 책임을 강화하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제재보다 앞서 실무에 적용 가능한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는 금융사 내부통제 미비로 발생하는 금융보안사고에 대해 징벌적 과징금 부과하고 기업 회계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경우 경영진 보수를 환수하는 보수환수제 도입 등을 예고한 상태다. 또 금융사고를 낸 금융회사 대주주에 대한 지분 매각 명령권을 전 금융회사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번 설명회에서 제시한 모범사례는 전산시스템 형식만 제시하는 등 실효성보다는 구색만 갖췄다는 인상이 강했다”며 “사고가 발생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등 주관적인 부분이 많아 실무진에서 겪는 어려움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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