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금융당국, 신뢰를 얻어라

입력 2014-08-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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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헌 부국장 겸 금융시장부장

얼마 전 금융권 CEO와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자리를 같이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금융권 현안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이분은 금융감독 당국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평소 기자들에게 솔직하다는 이분은 “감독당국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분의 주장은 이랬다. 대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처해 채권단이 협의 끝에 자금 지원 중단을 결정하면 금융감독 당국이 물밑으로 자금 지원을 하도록 요구해 놓고 나중에 부실이 발생하면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또 서민금융 지원을 강화하라고 해 놓고 부실이 많아지면 제재를 한다는 것이다. 부실 위험이 높아 곤란하다고 할 때는 지원하라고 엄포를 놓더니, 막상 부실이 발생하면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행정지도와 공정위의 담합 사이에 낀 보험사의 불만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보험가격은 자유화됐지만 생명보험, 자동차보험 등 서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보험료는 금융감독 당국이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서민의 가계 부담 완화 차원에서 가격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금융감독 당국의 명분은 충분히 이해한다. 문제는 금융감독 당국의 행정 규제를 또 다른 규제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 담합으로 본다는 것이다.

하나의 행위를 가지고 부처마다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금융회사 입장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례가 지난 10여년간 퇴직보험, 자동차보험, 변액보험 등 6건에 달한다.

특히 공정위는 2011년 16개 생보사에 대해 확정금리형 상품의 예정이율과 변동금리형 상품의 공시이율을 담합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대법원은 최근 생보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규제 당국의 이중 잣대로 얼마나 많은 행정적 낭비를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전자상거래 결제를 간편하게 하도록 하겠다며 관련 규제를 완화한 일명 ‘천송이 코트 대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청와대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에도 여전히 전자상거래에서 공인인증서를 요구해 중국인들이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금융당국이 서둘러 관련 규제를 풀었다.

해외 소비자들의 직접구매를 편리하게 하겠다는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카드사는 규제 완화에 따른 정보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은 연초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전례에 없는 강력한 대책을 놓았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정보 유출 위험 지적에도 9월부터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PG사)에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물론 금융당국은 기술, 보안, 재무 능력을 갖춘 PG사에 한해 신용카드 정보 저장을 허용하겠다고 나름 보완 대책을 마련했다.

또 PG사에 대한 검사를 기존 2~6년 주기에서 2년에 1회로 강화하고 사고 때 배상책임보험 가입금액을 현행 1억원에서 금융회사(은행 20억원, 카드사 10억원)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카드사 정보 유출 사고가 기술, 보완, 재무 능력이 부족해서, 검사와 배상책임보험 가입금액이 적어서 발생했던가. 막상 PG사에서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카드사로 불똥이 튈 수밖에 없어 불안해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육성해 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하다.

문제는 금융권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권이 보신주의에 빠져 중소·벤처기업 금융 지원을 소홀히 한다고 지적하지만, 현재 여건하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중소·벤처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부실 위험이 큰 만큼 금융권이 충분한 검토를 통해 지원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금융권을 다그쳐도 보신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금융감독 당국이 금융권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정책은 겉돌 수밖에 없다. 시장 발전에 근간을 둔 합리적 정책 수립과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한다면 ‘못 믿을 금융당국'란 비난은 받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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