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의 세태공감] 어느 ‘기레기’의 변명

입력 2014-07-03 10:53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멘붕’, ‘먹방’과 같이 인터넷상에서만 통용되는 단어가 있다. ‘개나 소나 기자’라는 말만큼이나 기자로서는 듣기 싫은 말이자 가장 동감하는 단어 ‘기레기’다.

기레기는 네티즌이 창제한 넷 용어로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말이다. 말도 안 되는 기사, 어이없는 기사 즉 육하 원칙이 완성되지 않은 기사를 쓰는 기자를 향한 일종의 욕이다.

어쩌다 이처럼 굴욕적인 용어가 생겨났을까 하는 고심 속에 핑계를 찾아보자면 포털 사이트의 어뷰징 조작과 이율배반적 제재, 자극적 헤드라인을 선호하는 인터넷 독자 그리고 미디어의 포화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유기적으로 연관성을 갖는 이 핑계거리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 서비스와 동시에 태생적으로 안고 있던 문제점이었다.

2000년대 초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뉴스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종이 매체의 기사를 선별해 게재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나마 양질의 기사를 서비스하던 시대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인터넷 매체들의 전성기와 함께 막을 내렸다. 포털 사이트는 진입장벽이 낮은 탓에 날로 늘어나는 인터넷 미디어를 감당하지 못한 채 정책 변화만 거듭했고, 그 결과 지금의 ‘어뷰징’이라는 필요악을 만들었다. 현재 어뷰징은 일부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국내 굴지의 매체에서 군소 매체까지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포털 검색어와 결부된 어뷰징은 기사 송고와 동시에 최신기사 몇 건만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노출하는 방식의 정책에 의해 과열 경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 분석이 없는 기사의 속출로 이어졌고, 결국 ‘기레기’를 양산한 셈이 됐다.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자극적 헤드라인은 해당 매체 유입과 직결되었고, 경쟁은 치열해져 간다. 결국 독자는 낚시의 희생양이 된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탤런트 신소율을 들 수 있다. 신소율은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에서 명품 연기로 주목을 받으며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동시에 미디어들의 조회수 경쟁은 시작됐고, 급기야 이슈와 상관없는 과거 노출 사진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웬만한 연예인들 입에서 “기레기” 소리 한 번 나오지 않길 기대하긴 힘들다.

연예인들의 열애 사진을 몰래 찍어서 기사화하는 매체, 일명 ‘파파라치’가 한국에도 등장했다. 파파라치 등장 초기에만 해도 기자들 사이에서 우려와 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모든 매체가 해당 매체를 인용하며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실시간 검색어 상단이 온통 해당 매체명과 파파라치 사진으로 도배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특종’의 개념과 의미도 사라졌다.

기레기도 기자로서 독자에게 바람직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기자와 기레기 사이 어디쯤에서 고심하는 기자들이 더 이상 기레기로 소모되지 않기 위해 대형 포털의 일방적인 정책이 아닌, 포털과 언론 연합이 머리를 맞댄 해결 방안 모색이 절실하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