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창조경제 스위스에서 답을 찾는다] “직업학교 나와도 원하는 지위에 올라”

입력 2014-04-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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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게넥 마아티 베른 상공업직업학교 교장 “3~4년 과정 마치면 대학 진학길 열려”

“직업학교만 나와서 취업을 하더라도 중산층이 되는 데 거의 장애가 없습니다. 물론 원하는 만큼 사회적 지위에도 오를 수 있지요.”

스위스의 직업교육 시스템을 설명하는 모르게넥 마아티(Sonja Morgenegg-Marti) 베른상공업직업학교(GIBB) 교장의 말투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가 설명하는 스위스의 선진화된 교육체계는 넘쳐나는 고학력 실업자 문제, 스펙 중심과 학력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실제 스위스 소재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사람 중 VET(Vocational Education Training)에서 공부한 사람은 하인즈 커런 스위스경제연합회 회장, 세르지오 에르모티 거대금융그룹(UBS) CEO 등 여럿이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 중심가에 위치한 GIBB. 교장실 한쪽엔 한국 전통 문양의 수첩과 예쁘장한 장신구함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지난 1월 스위스 정부 초청으로 박근혜 대통령 방문 때 모르게넥 마아티에게 준 선물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스위스의 직업학교 교육방식을 벤치마킹하고 향후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GIBB를 찾기도 했다.

학생 7700여명, 교원 700여명 규모의 스위스 최대 직업전문 기술학교인 이곳은 스위스 기술인재 양성의 산실이라 불린다.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해법을 찾았던 이곳의 교육 시스템이 궁금했다.

그는 GIBB의 역사부터 소개했다. 무려 200년이나 됐다. 1826년 세워진 GIBB는 오랜 전통만큼이나 대규모, 양질의 교육시스템을 자랑한다. 공부하는 학생만 800여명, 70개의 직업군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직업교육 분야는 건축설계·서비스(요리·미용업 등)·컴퓨터엔지니어링·자동차 기기정비 등이다. 기간별로도 1년부터 4년까지 다양했다. 마아티 교장은 “4년 과정을 마치면 이곳에서 바로 전문대학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직업학교와 차별화된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실습을 제공하는 기업만 2800여곳에 달한다. 여기엔 IBM, 스위스 최대 통신회사인 스위스컴, 제약사 갈레니카, 방산업체 루아그 등 스위스 굴지의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철저히 실용학습 시스템을 표방하다 보니 직업훈련 교사들도 실제 업무 경험이 중요하다. 전체 수업의 절반 정도는 기업 임원들에 의해 특강 형식으로 이뤄진다. 마르티 교장은 “현직에서 중요 실무 업무를 총괄하는 선생님들이 직접 강의를 하다 보니 학생들은 현장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둔 살아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기업과의 협력체계도 탄탄했다. 자동차·건축·컴퓨터·미용·외식업체들로 구성된 각 산업 분야별 협회들과 1년에 4차례 정기적으로 만나 커리큘럼을 논의하며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과정을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스위스가 실용적 직업교육 훈련제도로 낮은 청년실업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술인재를 중시하고 학력보다는 능력이 우선시되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그는 “스위스 부모들은 자녀들이 기술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한다”면서 “3~4년 과정을 마치고 원할 경우 충분히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점도 직업학교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스위스 직업학교 과정을 이수하려면 먼저 기업에 취업하는 게 우선인데, 이때 스위스 학생들에게 일할 회사의 규모는 중요치 않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임금, 복지 수준에서 큰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강소기업이 경쟁력을 갖는 스위스 사회에선 스펙이 아닌 실력만으로 충분히 중소기업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다. 실제 직업학교를 졸업한 이후 정직원으로 채용될 경우 임금 수준은 일반 대졸 초봉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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