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하인리히 법칙과 연준 100년- 민태성 국제경제부장ㆍ뉴욕특파원 내정

입력 2013-12-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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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성 국제경제부장
지난 16일 오후 2시. 미국 워싱턴D.C.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대회의실에는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거물 4인이 나란히 앉았다.

전직 연준 의장인 폴 볼커와 앨런 그린스펀, 현직 의장인 벤 버냉키 그리고 내년 취임을 앞두고 있는 재닛 옐런 부의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연준의 설립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3년 연방준비제도 법안에 서명하면서 연준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었고 1970년대에는 물가와의 사투를 벌였으며 2008년에는 금융위기에 이은 유럽발 재정위기라는 폭탄을 맞았다.

대공황이라는 첫 번째 위기에 대한 연준의 대응은 빵점이었다. 연준은 말라가는 경제에 물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숨통을 죄는 악수를 뒀다.

1970년대 볼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인플레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기준금리를 20%대로 끌어올리며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살인적인 금리에 대해 시장은 반발했지만 이는 다시 찬사로 바뀌었다. 1979년 13%를 넘었던 물가 상승률은 4년 뒤에는 3%대로 낮아졌다.

볼커는 중앙은행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물가 관리와 관련해 가장 성공한 사례를 남긴 셈이 됐다.

그린스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평가가 엇갈린다. 미국 경제는 1990년대 IT산업의 발전과 함께 저물가·고성장이라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호황기를 누렸고 그린스펀은 그런 신경제를 찬양하기에 바빴다.

그는 신경제 예찬론자를 자처하며 초저금리 정책을 지속했다. 그러나 믿었던 신경제는 1990년대 말 거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나스닥은 무너졌고 IT산업은 휘청였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시장에서 터졌다.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몰렸고, 이들의 탐욕은 금융기관의 오만과 맞물려 금융위기라는 뇌관에 불을 붙였다.

그린스펀의 초저금리 정책이 금융위기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중요한 배경이 됐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재임시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그린스펀이 퇴임 이후에는 오히려 선배인 볼커에 비해 영향력이 위축됐다는 사실도 그에 대한 평가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버냉키는 전례없는 통화정책을 시행한 연준 의장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는 금융위기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더이상 낮출 수 없게 되자 사실상 무제한적 유동성 공급책인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군사용어를 떠올리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도 그의 작품이다. 아직까지는 이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먹혀들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4%대를 넘어섰고, 실업률은 7%로 낮아졌다. 내년 글로벌 경제의 회복은 미국이 주도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개운치가 않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고는 예측하지 못하는 한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경고성 징후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대형 사고가 1건 일어나려면 그 전에 경미한 사고가 29건, 이보다 적은 사고로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이 300건 정도가 이미 존재한다.

이같은 징후들을 제대로 파악하면 위기를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도 수많은 전문가들이 부동산시장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그린스펀은 물론 버냉키도 이를 무시했다. 초점은 다시 초저금리에 맞춰진다. 이를 통해 위기를 돌파했지만 초저금리에 따른 위험은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

버냉키 자신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버냉키가 2005년 취임했고 금융위기 사태가 2008년 벌어졌으니 결과적으로 그는 위기를 3년 정도 키운 셈이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양적완화 정책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위험에 대한 징후들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이 나온 것은 80여년 전이지만 연준이 위험 징후를 포착해서 위기를 사전에 진압한 적은 아직 없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또 다른 금융위기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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