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정부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규제대상인 한국수력원자력 등으로부터 받은 사업비를 흥청망청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 한 명당 컴퓨터를 무려 4대나 구입하는가 하면 240만원짜리 노트북을 440만원에 구입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전산용품 구입을 해 온 사실이 6일 확인됐다. 특히 이런 비품구입이 일부 업체를 통해서만 이뤄졌다는 점에서 납품담합 또는 특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KINS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직원 수가 427명에 불과한 KINS의 2013년 기준 컴퓨터 보유대수는 데스크탑PC 902대, 노트북 554대, 태블릿PC 327대 등 총 1743대에 달했다.
같은 기종의 PC를 구매하면서도 구입비는 천차만별이었다. 215만원에 살 수 있는 똑같은 기종의 PC를 주거래업체에서 30% 이상 비싼 285만원에 구입하고, 노트북의 경우 240만원짜리 기종을 석 달 후에는 440만원에 구입했다. 소프트웨어도 80만원, 220만원으로 구입할 때마다 가격이 달라졌다.
전체적으로 KINS가 구매한 물품은 다른 업체에서 관공서에 남품하는 조건보다 20~50%가량 비싼 것으로 분석됐다.
KINS에 전산용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2009년 이후 유에스엠, 송도정보, 현정보 등 모두 3곳으로 남품대금만 90억. 금년에도 3개 업체가 동일한 순서로 번갈아가며 낙찰을 받았다. 그런데 이 업체들의 계약서상 주소지가 모두 대전 서구 만년동 테크노월드 5층인데다 실제 영업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난 정황으로 볼 때 같은 업체거나 담합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특정 업체에서 시중가격보다 비싸게 구입했다는 점에서 특혜 의혹도 사고 있다.
KINS는 또 이어폰을 개당 16만원, 헤드셋을 개당 24만원에 구입하는 등 컴퓨터 주변기기를 최고급 사양으로 사들이고, 이밖에도 키보드와 무선마우스, 노트북 받침대, 마우스 손목보호대 등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소모품까지 모두 최고가로 비용 처리했다.
KINS가 이처럼 비품구입예산을 펑펑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원자력안전법상 원안위로부터 업무를 수탁 받는 KINS가 사업자와 직접 협의해 필요한 비용을 징수(사업자부담금)하고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 활용토록 했기 때문이다.
전체 1000억여원의 예산 중 270억인 정부출연금은 회계 관리가 비교적 투명하지만 예산의 절반 이상(526억원)을 차지하는 사업자부담금은 아무런 통제장치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업자가 정부에 직접 수수료 형태로 납부하고, 일본이나 영국은 정부에 세금 형태로 납부해서 규제기관의 예산으로서 정부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에 비교적 회계 관리가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노 의원은 “원자력안전위의 산하기관인 KINS의 재정이 사업자에 점차 종속돼 독립적인 규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외국 사례와 같이 KINS의 재정이 정부와 국회에서 투명하게 편성·집행을 점검할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원안위는 노 의원의 문제제기에 지난 달 25일부터 이날까지 2주간 일정으로 자체 특정감사를 벌였다. 원안위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시정 조치와 함께 관련자에 대한 징계 수위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