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창 숲 연구소 대표
그러니 나무는 누구보다 계절의 변화를 잘 알고 있는 철이 든 생명체다. 나무는 어느 때 성장해야 하고, 꽃을 피워야 하고, 잎을 내어야 하며, 어느 때 모든 욕망을 버리고 쉬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안다. 하지만 단풍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알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며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스스로 절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야말로 철부지 아닌가.
모든 생명은 성장을 위해, 존재를 위해 질주하지만, 어느 땐가 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고, 대나무가 마디를 만드는 지혜로운 삶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가치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지만 나무가 없고, 꽃이 없고, 새들이 없는 민둥산이라면 오르기를 기꺼이 할까?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것은 그만큼 나무가 만들어 내는 푸른 공기가 있고, 맑은 냇물이 있고, 재잘대는 야생의 새들이 있고, 겨울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도토리를 땅속에 숨기는 다람쥐나 청설모가 있는, 살아 있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기에 기꺼이 하는 것이 아닐까.
현실은 그러한 즐거움과 삶의 의미를 속도와 성공이란 논리 아래 모두 삭제해 버린다. 정상이란 곳이 반드시 꼭짓점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그 자연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소리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달팽이가 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생태적인 사회가 아닐까.
가을 숲을 걷는다. 숲은 나에게 속삭여 준다. 쉼 없이 달려야만 하는 나의 일상은 진정한 일상이 아니라고. 마치 기계처럼 따뜻함이 없는 내 삶을 꾸짖는다. 과학기술의 도구가 아니라, 느끼며 살아야 하는 생명체라고 죽비로 내리치듯 꾸짖는다. 놓여 있는 일들이 아무리 나를 압박하고 재촉해도, 나는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따뜻함이 살아있다는 내 감성을 확인할 것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나무처럼, 대나무처럼 나의 나이테나 마디를 확인하는 여유를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