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민원을 줄이자] 민원 감축 압박에 보험사들 ‘울며 겨자 먹기식’ 지급

입력 2013-10-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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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오해와 진실> “성과 좋지 않으면 불이익” 금감원 엄포… “블랙컨슈머 양산” 보험업계 부작용 호소

# A씨는 2008년 13개 보험사에서 중복 보장되는 16개의 보장성 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A씨는 지난해 9월까지 473일간의 입원 기록을 만들었다. 당뇨병 등을 핑계로 입원이 비교적 쉬운 소규모 병원 10곳을 옮겨 다니며 ‘나이롱환자’로 생활한 것이다. A씨는 보험사들로부터 3억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검찰에 구속됐다.

# 보험사 보상담당 직원 B씨는 얼마 전 한 자동차 추돌 사고의 보상금으로 50만원을 책정했다. 그런데 고객은 막무가내로 200만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배짱을 부렸다. 그는 200만원을 책정하지 않으면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협박했다. 오랜 실랑이 끝에 결국 지급 금액은 120만원으로 결정됐다.

누가 봐도 허위 입원 성격이 짙지만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민원 제기의 두려움 때문이다. 보험사가 약관 위반 등을 들어 보험금 지급을 미루면 계약자들은 곧바로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다. 보험 민원 축소를 강조하는 당국의 엄포에 빗발치는 민원이 성가셨던 보험사들은 결국 보험금을 지급해 계약자 불만을 무마시킬 수밖에 없다.

◇ 보험으로 이득 바라는 계약자들…블랙컨슈머·모럴해저드 난제 = 금감원이 발표한 2013년 상반기 금융 민원 및 상담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보험 민원은 2만1231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1만8918건에 비해 12.2%(2313건) 늘었다. 또 보험금 산정 및 지급 관련 민원이 5702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5092건에 비해 610건(12%) 증가했다.

보험은 은행이나 카드 민원과 달리 보험금을 산정해야 하는 특성상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다. 보험 모집·유지·보험금 지급의 각 단계마다 민원이 발생할 여지가 있고 사고·질병 등 사안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분쟁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병원·정비업체 등 관련 업계에서도 민원을 제기할 수 있어 단순히 건수 증가만으로는 민원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도덕적 해이가 심각할 뿐 아니라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악성 소비자)의 난립도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잘못된 인식과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보험 범죄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보험사 민원 담당자는 “보험사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고 중복보험이나 이중이득을 금지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계약자들은 무조건 많이 받으려고만 한다”며 “보상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나 납득 과정에서도 다툼이 많고 도덕적 해이 문제도 심각한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민원을 줄이기 위한 보험사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지만 블랙컨슈머 대응 등 감독당국의 현실적 대책도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감독당국·업계, 민원 감축 해법 온도차 = 최수현 금감원장은 취임 첫 일성으로 금융권의 민원 감축을 지시했고 이에 금감원은 지난 8월 보험 민원 감축 표준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보험업계는 당장 2년 내에 전체 민원 건수를 절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이번 표준안을 통해 감독당국과 업계 간 보험 민원을 바라보는 온도차가 뚜렷하다.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가 먼저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블랙컨슈머 등의 민원을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고 감독당국의 압박에 수치를 줄이는 데 급급해 오히려 부작용을 양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민원 감축 방안이 오히려 블랙컨슈머의 표적이 돼 이들을 양산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표준안은 선량한 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미흡하고 민원 감축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 같다”며 “감독당국의 민원 감축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소비자를 걸러내는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계약자들이 금감원에 민원을 넣는다고 하면 보험사는 무리를 해서라도 계약자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다”며 “이런 점을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독당국은 블랙컨슈머에 대해 좀더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가 원하는 블랙컨슈머의 기준을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이 과정에서 오히려 선의의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두 측면을 동시에 봐야 하기 때문에 업계와 시각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전문가들은 보험 민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이해관계자들의 역할이 합리적으로 배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험사는 상품 특성이나 소비자 이해도를 고려해 민원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고 감독당국 또한 소비자 보호와 보험시장의 효율적 경쟁에 도움이 되도록 민원 관리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악성 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분쟁 발생 이전에 조정할 수 있는 제도나 사법기관 판결이 확정된 민원은 포함시키지 않는 등 제도적 보완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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