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삽화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지난 26일(한국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의 로열 메이페어 골프코스에서 막을 내린 CN 캐나디언 위민스 오픈은 세계 골프팬들에게 근래 보기 드문 무예 수준의 명승부를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 라운드 챔피언 조의 게임에서 펼쳐진 대결은 무예소설에서도 접하기 힘든 장면으로, 열성 골프팬들의 숨을 멎게 하기에 충분했다.
16세의 연약한 소녀와 강건한 체력과 파이팅으로 뭉친 바이킹의 후예들을 한조에 묶은 것은 다른 스포츠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조건을 배제한 채 오직 스코어만으로 평가하는 프로골프이기에 가능한 조 편성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뉴질랜드로 이민 간 리디아 고(한국명 고보경)는 아마추어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있지만 외양으로는 영락없는 16세 소녀다. 반면 한조에 편성된 스웨덴의 수전 페테르센(32)과 캐롤라인 헤드월(24)은 바이킹의 후예답게 강건한 체력에 파이터의 기질을 타고 난, 리디아 고에겐 이모나 언니뻘의 노련한 프로다.
두 바이킹의 후예가 전의에 불타 성난 투우처럼 골프코스를 누빌 때 리디아 고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수행자를 닮은 고요한 얼굴로 담담하게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쳐나갔다.
한자의 담(淡)이 그렇게 어울릴 수 없었다. 한자에 담긴 뜻(맑은, 엷은, 담백한)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듯한 리디아 고의 플레이의 진수는 바로 담담(淡淡) 그 자체였다.
이런 담담함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기회는 놓치지 않았다. 투지로 무장하고 날뛰던 페테르센과 헤드월은 리디아 고의 담담한 플레이에 스스로 무너졌다. 마치 난로가의 얼음이 맥없이 녹아내리듯.
리디아 고의 담담한 플레이가 결코 처음 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선배 태극낭자들이 담담한 플레이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박세리, 김미현, 장정의 대를 이어 LPGA투어를 주름잡는 박인비 신지애 김인경 최나연 유소연, JLPGA의 전미정 신현주 이지희 송보배 김나리, KLPGA의 김자영 안신애 전인지 김혜윤, 신세대스타 김효주 등의 플레이는 폴라 크리머나 크리스티 커, 수전 페테르센 류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어쩜 이 같은 담담한 플레이가 골프 한류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담담함은 골프를 하는 마음의 자세뿐만 아니라 스윙에서도 골퍼들이 목표로 삼아야 할 기본이라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온몸을 쓰는 요란한 동작보다는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제거한 간결한 스윙이야말로 실수를 최소화하면서 일관성 있는 게임을 펼칠 수 있는 요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의 자세와 스윙은 골프를 대결구도의 쟁투로 인식하는 한 터득할 수 없다. 골프를 쟁투를 해소하는 ‘석쟁(釋爭)의 게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골프의 진수에 도달할 수 없다. 동반자는 물론 주변의 모든 조건들, 골프도구, 수많은 장애물들과의 대립대결관계를 풀고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조화를 추구할 때 비로소 담담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