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세제개편 ‘재검토’ 아닌 증세 위한 대국민 설득 나섰어야
이장규 서강대 초빙교수는 경제난맥상을 풀기 위해선 박근혜 정부가 사회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 창조경제 실현에 필요한 규제 완화 등에 있어 국민적 합의를 우선 도출해야 함에도 정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최근 서울 역삼동 삼정KPMG 사무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특히 세법개정안 논란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증세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창조경제를 위해선 관료 중심의 인선을 바꾸고, 감사원 감사를 포함한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제 문제의 정치화 현상을 지적하며 의회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범 6개월을 맞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는.
“현 정부 구성을 포함해 근혜노믹스에 대한 걱정이 많다. 대통령 개인의 내공, 정치 경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DNA, 즉 최고통치자로서의 카리스마, 정국 돌파력, 도덕성 등에서 박근혜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크다. 걱정은 지금 추구하는 정책방향이나 채용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느냐는 점이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쳐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통합의 리더십이다. 복지국가 건설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더 걷으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데 박 대통령이 국민 반발에 밀려 세법개정안의 원점 재검토를 말하면, 이런 리더십으로 어떻게 복지국가로 끌고 가겠나.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고, 욕 먹으면서도 여러 고통스러운 정책을 수용해야 하는데 박 대통령이 지금 보이는 리더십은 그렇지 않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경제팀이 경제행정을 펴나가는 데에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내건 ‘증세 없는 복지’가 사탕발림이란 지적이 있다.
“사탕발림이 아니라 거짓말이다. 박 대통령이 세법개정안을 원점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비정상적인 세제를 정상화하고도 부족하면 증세할 수밖에 없다’고 국민들께 양해를 구하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증세를 위한 대국민 설득 작업에 나서란 뜻인가.
“경제 문제를 다루는 정책 결정은 선택행위이고 정치행위다. 대통령은 최고 정치인으로서 세금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바꿔줘야 하는 가장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세금을 더 걷을 수밖에 없다. 대외여건도 좋지 않지만 우리 경제가 더 어려운 건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도 실질적인 에너지공급원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박근혜 정부가 지닌 근본적인 약점이자 딜레마다.”
△증세의 방향은.
“우리가 1997년 도입한 부가가치세는 지금도 10%다. 20%나 되는 나라들도 적지 않다. 세금 올리자는 말이 부담스럽더라도 정부가 정권 생명을 걸고 부가세를 2% 정도 올려야 한다. 소득이 더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는 것도 맞지만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다고 세금 한 푼 안 내는 것도 옳지 않다.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생각해야 한다. 근로자 40%가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다. 월수입이 아주 적다 해도 소득이 있다면 단돈 100원의 세금이라도 내야 한다.”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어떻게 평가하나.
“좋은 슬로건이나 이를 추진하는 사람, 방식이 대단히 비창조적이고 복고라는 게 문제다. 예를 들자면 이 정부에서 새판을 짜는 사람들이 관료일색이다. 관료, 군인, 검사뿐이지 않은가. 가장 비창조적인 맨파워의 집합체다. 리더가 관료들에 창조적 메시지를 주거나 제도를 창조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 노력이라도 보였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안 보인다. 대한민국의 창조력을 가장 해치는 감사원은 그 기능을 갈수록 강화한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창조경제의 첫 번째 정책 선택으로 감사원의 정책감사 기능 자체를 없애거나 대폭 약화·축소시킬 것이다. 회계감사라는 본연의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창조 행위는 기본적으로 정부 입장에선 하던 일을 줄이는 것이다. 정부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해야지 잘할 수 없고 잘못할 확률이 큰 건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성장 여력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노력을 창조경제라고 정의한다면 창조경제의 첫째 조건은 사회적 합의다. 고부가가치산업을 위해 서비스업을 폭넓게 개방하고 규제를 풀자는 식이다. 사회적 합의 도출에 있어 집단이기주의는 꼭 극복해야 할 과제이고, 이를 가장 강력하게 저해하고 있는 조직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다. 잠재 성장력을 확충하기 위해 증세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라는 장애물부터 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가 경제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도 있다. 정치·경제의 상생 방안은.
“경제 문제의 정치화 현상은 이 시대가 당면한 또 하나의 숙제다. 정책결정의 핵심이 청와대에서 여의도로 많이 넘어갔다. 우리 의회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할 때가 왔다. 한국경제가 고꾸라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주는 첫 번째 요소가 의회제도다. 정책결정의 생명선인 타이밍, 효율성을 감안해 국회의원들도 스스로 할 수 없는 건 털어내고 ‘이런 건 정부에서 알아서 하고 저런 건 협의하자’고 해야 한다.”
30년 경력 베테랑 기자 출신… 하이트진로 부회장 등 역임
이장규 서강대 초빙교수는 국내외 경제 문제에 천착해온 31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 출신이다.
이 교수는 1976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뉴욕특파원, 경제부장, 일본총국장, 편집국장, 경제대기자를 지냈다. 1996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은 칼럼으로 필명을 날렸다.
2007년엔 기업인으로 변신해 하이트진로그룹 부회장, 하이트홀딩스 대표, 하이트맥주 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해부터 삼정KPMG 부회장을 맡고, 모교인 서강대에서 경제대학원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이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서강대 1년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그는 학창 시절의 박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의 딸이라고 비난받을 일은 전혀 안 했다. (청와대 경호) 차를 신촌로터리에 세우고 학교까지 걸어올 정도로 굉장히 겸손하고 모범적이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부 출범 후 관료 중심 인선, 증세 회피 등을 두고는 거침없는 고언을 하고 있다.
저술 활동도 왕성하다. 앞서 그는 5공화국 당시의 경제사건과 정책적 배경 등을 재조명한 ‘당신이 대통령이야’(1991)와 그 속편에 해당하는 ‘실록 6공경제’(1995) 등을 통해 한국경제의 발전과정을 기록했다. 기자생활 후반엔 브릭스(BRICs), 이머징마켓, 자원전쟁 등 세계경제의 흐름 변화에 주목, 세계 곳곳을 누비며 ‘19단의 비밀-다음은 인도다’(2004), ‘카스피해 에너지 전쟁’(2006) 등을 썼다.
지난해엔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본 한국경제통사인 ‘대통령의 경제학’을 펴냈다. 역대 대통령별로 구분해 한국현대사를 단행본으로도 펴낼 계획이다.
‘한국경제의 살길 찾기’ 작업에 매진해온 이 교수가 바라보는 한국경제의 내일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 교수는 대통령의 통합 리더십 부족, 경제 문제의 정치화 현상 등을 언급하며 “가을부터 ‘한국경제 멸망론’을 쓰려고 한다. 이렇게 가면 정말로 멸망한다”고 경고했다.
△1951년 부산 출생 △서울고 △서강대 경제학사 △미국 미주리대 대학원 신문학 수료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뉴욕특파원, 경제부장, 일본총국장, 편집국장, 경제대기자 △하이트진로그룹 부사장 △하이트홀딩스 대표이사 △하이트맥주 대표이사 △삼정KPMG 부회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