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으로 통일문제 관련 작품 활동을 해 온 이기형 시인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도쿄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에서 2년간 수학한 후 1947년 ‘민주조선’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고인은 1938년 지인을 통해 몽양 여운형(1886∼1947)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서울 계동 자택을 수시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고 광복 후에도 정국인식을 같이하며 몽양과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동신일보와 중외신보, 민주조선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김구, 이승만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임화, 안회남 등 월북문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다.
고인은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던 몽양이 서거한 후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했다. 이후 33년 만인 1980년 다시 시작 활동을 재개했다.
고인은 재야 민주화 통일운동에 참여하면서 분단과 통일문제를 다룬 시를 꾸준히 발표했으며 1989년에는 시집 ‘지리산’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북한에 어머니와 처자식을 남겨 둔 채 월남한 고인은 2003년과 2005년 평양을 방문, 딸을 만났지만 어머니와 아내를 다시 보지 못한 그리움을 시에 담아 표현하기도 했다.
고인은 92세 때인 2009년 열 번째 신작시집 ‘절정의 노래’를 내고 2007년에도 시집 ‘해연이 날아온다’를 내는 등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창작활동을 활발히 해 왔으며 몽양 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고문과 한국작가회 고문을 맡아왔다.
유족으로는 아내 방현주(89)씨와 한양대 화학과 교수인 아들 휘건(52)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4일 오전, 장지는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