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넘은 불만표출 일반팬들에 ‘눈살’… 패배한 선수·감독 인격모독하기도
1986년 10월 22일.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홈팀 삼성이 역전패를 당했다. 그러자 이날 오후 9시 45분께 흥분한 삼성팬 2000여명이 대구시민구장 밖에 세워 뒀던 해태 구단버스를 에워쌌고, 그중 누군가 돌을 던져 앞 유리창을 깼다. 곧이어 다른 팬이 버스에 불을 질렀다. 버스는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불에 타 버렸다. 방화 직후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바리케이드를 친 팬들의 저지로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대한민국 스포츠 팬 문화에 큰 오점을 남긴 사건이다. 1982년 야구를 시작으로 축구(1983년), 농구(1997년), 배구(2005) 등 프로 스포츠가 국내에 둥지를 튼 지 30여년이 흘렀다. 이처럼 프로리그가 탄생하자 스포츠의 팬 문화도 시작됐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는 단순히 구단을 선호하는 것을 넘어서 열렬히 지지하는 ‘서포터스(Supporters)’라는 이름으로 발전하며 프로 스포츠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팬 없는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이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빗나간 팬심(心)은 폭력적으로 변질되거나 다른 팀에 대한 비하 등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과거 삼성 팬들이 해태 구단버스에 불을 지른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도 문제다. 2011년 8월 당시 인천의 허정무 전 감독은 구단 서포터스와 간담회를 가졌다. 성적 부진에 대해 대화를 요구하는 서포터스의 요청에 허 전 감독이 직접 나선 것. 하지만 구단의 성적 부진에 대한 진솔한 설명과, 넉넉지 않은 구단 자금 사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에도 일부 참가자들은 전술 부재와 잘못된 선수 기용 등만을 문제 삼으며 허 전 감독을 몰아세웠다. 불과 1년여 전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을 이룬 감독에게 씻을 수 없는 기억일 수밖에 없었다. 선수 기용이나 전술 등은 감독의 고유 권한으로 구단 수뇌부도 이를 문제삼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선수 기용 방식에 대해 정중히 문의할 수는 있지만 “A선수를 왜 기용하지 않느냐” “전술에 대한 개념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선수 파악도 못하고 있다”는 등 청문회를 방불케 하는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는 구단을 위한 자세로 볼 수 없다.
빗나간 팬심은 온라인상에서 더 심하다. 익명성을 무기로 비난과 공격의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당시 ‘손연재 악플사건’이 대표적이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올림픽 결선 진출을 이룬 손연재는 “운동은 안 하고 CF만 찍어댄다” “실력보다 외모와 언론 플레이로 떴다. 차라리 연예계로 가라”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은 언론의 부풀리기다. 잘하는 선수는 안 나오는 대회에서만 메달 딴다” 등과 같은 악의적인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인터넷 악플은 글쓴이의 신원 파악이 어렵고 처벌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서울 서초경찰서 김주호 사이버팀장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기준이 불명확하다. 단순한 저질적 표현이나 주관적 감정 표현 정도는 처벌하기 곤란한 면이 있다”고 밝혔다.
조수경 스포츠심리연구소 조수경 박사는 “서포터스는 말 그대로 팀과 구단 관계자들을 뒷바라지 해주는 사람으로 인식돼야 한다. 경기장이나 밖에서 입장을 드러낼 때는 신중해야 한다. 서포트라는 의미를 왜곡해 이를 남용하려는 의식을 바꿔야 건전한 응원 문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