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엽의 시선]인종차별에 둔감한 한국인

입력 2013-04-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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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선덜랜드는 파올로 디 카니오(44)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마틴 오닐 전 감독과 결별한 지 24시간 내에 이뤄진 전격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디 카니오는 부임과 동시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전력 문제였다. 라치오 로마에서 활약하던 지난 2005년 그는 경기 중 팬들을 향해 나치식 경례를 했던 전례가 있고, 그밖에도 수차례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자서전에서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고결한 목표와 굳은 신조로 무장한 사람’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무솔리니가 누구인가. 파시스트 당의 당수이자 히틀러와 함께 세계 제2차대전을 일으킨 인물이다. 디 카니오의 선임 이후 선덜랜드 팬들이 홈경기 보이콧을 선언하고 부구단주가 사임 의사를 밝힌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디 카니오는 영국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고 항변했지만 여전히 디 카니오는 좋은 느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인종차별과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선수에게는 어김없이 무거운 벌금과 함께 출장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팬들에 대해서도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홈팀에게는 무거운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이 같은 부분에 대해 둔감하다. 국내 한 고교생은 지난 2일 박지성의 소속팀 퀸즈파크 레인저스의 수비수 크리스토퍼 삼바의 트위터에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삼바는 직전 경기에서 큰 실수를 범해 팀의 패배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이 고교생은 분을 참지 못한 채 삼바의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삼바는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속좁은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즉각 반발했다. 해당 학생은 차후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이 사건은 영국 현지 방송에서도 다뤄져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기에 충분했다.

한 고교생의 인종차별 논란이 잠잠해질 즈음인 지난 23일에는 포항 스틸러스 소속의 노병준이 자신의 트위터에 인종차별적인 글을 남겨 또 한번 논란을 일으켰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경기에서 카누테(상대팀 흑인 선수)를 한 번 물어버릴까? 시껌해서 별맛 없을 듯한데”. 프리미어리그에서 수아레스가 이바노비치의 팔을 문 장면을 패러디한 것으로 베이징 궈안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앞두고 궈안 공격수 카누테를 겨냥해 쓴 글이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노병준의 생각 없는 행동을 질타했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뒤였다. 노병준은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면…”이라는 답글을 달며 팬들의 비판을 비아냥거렸고 이후 논란이 된 글을 삭제했다.

노병준은 중고교생이 아니다. 33세나 된 성인이다. 트위터가 개인적인 생각을 적는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포항 역시 노병준에 대한 적절한 조치없이 사태를 넘긴 점은 더욱 유감스럽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팬들의 비난 여론 이후 충분히 사과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비아냥으로 일관한 노병준임을 감안하면 그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바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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