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콤비네이션 스핀이 끝나가자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캐스터의 멘트가 이어졌다. 경기장 내 모든 사람은 기입했다. 김연아는 전 세계인의 중심이 됐고,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그야말로 떠들썩한 휴일이었다.
김연아는 17일(한국시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대한민국에 감동을 선사했다. 어떤 폭풍이 이보다 강렬할 수 있을까.
그러나 기자는 가슴이 먹먹하다. ‘피겨여왕’ 김연아라는 엄청난 그늘에 가려 상대적 박탈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김주희. 모두가 잊어도 기자는 그녀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한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복서이자 국내 유일 세계챔피언. 그것도 라이트플라이급 8대 기구 통합챔피언이다.
김주희(27·거인체육관)는 2003년 한국챔피언이 됐고, 2004년에는 세계챔피언에 올라 지금까지 챔피언벨트를 유지하고 있다. 주먹 하나로 세계를 휘어잡은 그녀에겐 ‘금녀의 벽’이란 없었다. 모진 가난과 척박한 환경에서 이룬 거룩한 성과다. 김연아가 ‘피겨여왕’이라면 김주희는 ‘링의 여왕’이다. 기자는 그녀를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그러나 김주희의 일상은 영웅답지 못하다. 김연아가 ‘CF퀸’으로서 TV 광고를 독차지할 때 김주희는 대전료도 없어 마음을 졸여야 했다. 타이틀 방어전을 위해서는 약 1억5000만원의 대전료가 필요하지만 그를 후원하겠다는 기업(스폰서)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만약 6월까지 방어전을 치르지 못하면 챔피언은 자동 박탈이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김연아의 ‘화려한 귀환’이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유다. 두 명의 스포츠영웅을 보는 상반된 시선이 김주희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한다. 점점 짙어가는 어둠의 그림자 속에서 고독하게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