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들’은 어떤 사회적인 신드롬이나 코드와 맞아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상업영화에 충실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즉 과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했던 방식으로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것. 영화의 구조도 ‘오션스 일레븐’류의 여러 스타들이 등장하는 그런 구조를 갖고 있다. 순전히 오락적이고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가 이런 기록을 달성한 것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즉 우리나라 관객들도 이제는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순전히 오락적인 영화에 주머니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대중들이 영화를 보는 관점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거대 자본이 작품을 잠식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물론 상업영화가 상업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편중이 심하다는 얘기다. ‘광해’를 보면 이런 상업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양가감정을 읽을 수 있다. ‘광해’는 그 작품만으로 보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천 만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강박적인 마케팅과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는 ‘광해’의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대중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항간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게 없어 ‘광해’를 본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던 것. 심지어 CGV에서 이른바 ‘1+1’행사를 하면서 천 만 관객 마케팅을 위해 그 수치를 강제로 뽑아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도 했다.
여기에 49회 대종상에서 무려 15개 부문을 ‘광해’가 수상함으로써 논란은 더 커졌다. 누가 보면 올해 한국영화가 ‘광해’밖에 없었다고 오해받을 만한 몰아주기처럼 보였던 것. ‘광해’는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인기상, 조명상, 편집상, 기획상, 시나리오상, 의상상, 미술상, 음악상, 음향기술상, 촬영상, 영상기술상 총 15개 부문을 휩쓸었다. 결국 대종상의 ‘광해’ 싹쓸이 논란이 만들어짐으로써 올 한 해 영화관에서도 시상식에서도 ‘광해’만 보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수많은 다른 소규모 영화들에 대한 예의라고 볼 수 없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도둑들’과 ‘광해’같은 천만 관객 영화가 남긴 뒷맛은 이제 천만 관객 영화가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처럼 씁쓸하다. 물론 콘텐츠는 그만큼 대중적이어야 하겠지만, 이미 배급사가 멀티플렉스를 쥐고 있고 마음대로 상영관을 잡을 수 있다면 결국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영화들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상식은 이 우리네 이 자본 독점적인 영화관의 풍경을 재확인하는 자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영화는 물론 대중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상품의 속성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작품의 속성을 잃지는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작품보다는 상품에 더 골몰하는 처지가 된 것 같다. 거대 자본이란 영화 그 자체보다는 영화가 거둘 수 있는 수익에 더 몰두하기 마련이니까. 이런 자본 독점에 의해 가려지는 많은 좋은 영화들이 설 수 있는 터전을 문화계나 정부에서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형 배급사들 역시 영화가 결국에는 작품으로 존속해야 더 오래도록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