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스타성공학]나문희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입력 2012-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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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엔 동갑내기 '이대근씨 엄마'…막장 캐릭터도 혼신

“제가 젊었을 때 동갑 남자배우 엄마 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어요.”만약 요즘 젊은 여자 연기자들에게 동갑인 남자 연기자의 엄마 역을 맡으라면 대부분 난색을 표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기와 이미지, 배역에 제한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여자 연기자는 달랐다. 바로 젊은 시절 드라마‘멍게 엄마’에서 동갑인 이대근의 엄마 역을 기막히게 연기한 나문희(71)다.

요즘 TV에서 최고의 스타는 누구일까. 김희선 이민호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조승우 이요원일까. 아니다. 김정은 송중기 문채연 염정아 지성일까. 물론 아니다. 바로 나문희다. 요즘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MBC 주말 드라마 ‘아들 녀석들’, SBS 주말극 ‘다섯 손가락’, 그리고 MBC 일일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단순히 세 개의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 작품에 동시에 출연해도 전혀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각기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 넣는 진정성 있는 연기로 시청자에게 찬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문희 하면 붙는 수식어가 엄청나다. ‘최고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 ‘70대 나이에 영화와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서는 유일무이한 연기자’, ‘후배 연기자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선배 연기자’, ‘영화 감독과 드라마 연출자, 작가들이 가장 캐스팅 하고 싶은 배우’, ‘시청자가 인정하는 최고의 연기자’…수식어가 끝이 없다.

▲MBC '거침없이하이킥'
연기자로서 최고의 성공을 증언해주는 수식어들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나문희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그 속에 성공의 키워드가 있다.

라디오가 인기매체였던 1961년 MBC 성우 공채 1기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연기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 없는 나문희가 연기의 대가로 우뚝 선 데에는 라디오 성우시절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방송사 입사 후 연기 배우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그중 외화 더빙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외국 여배우들을 캐릭터 제각각 이잖아요. 목소리 연기하며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정확한 대사 발음도 성우시절 익힌 거에요.” 나문희의 성공의 키워드는 바로 어떤 일을 하든 열심히 해 그 일과 연기를 연계시켜 연기력의 스펙트럼과 연기의 세기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나문희는 TV의 대중화로 자연스럽게 탤런트로 입문한다. 하지만 그녀는 김혜자 처럼 빼어난 미모도 아니고 당시 여자 연기자로서 큰 체격 때문에 처녀 역보다는 어머니역을 많이 했다. “165Cm 지금은 큰 키가 아니지만 예전에는 여자 키로는 컸어요. 그런 때문인지 어머니 역할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도 참 열심히 했어요.”

젊은 연기자 특히 스타들은 캐릭터가 빛나거나 비중이 높은 캐릭터를 선호하고 작은 배역이나 악역, 노역은 기피한다. 하지만 나문희는 달랐다. 주어진 배역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막장 드라마의 개연성 없는 캐릭터를 맡았을 지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개연성과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역, 비중이 작은 캐릭터 등 온갖 배역을 맡으면서 다양한 연기의 문양을 체득해 최고의 연기자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야말로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성공한 연기자가 바로 나문희다.

1998년 MBC 방송사 화장실을 지나가다 큰소리로 혼자서 떠드는 여자의 모습에 가던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화장실을 나선 사람은 바로 드라마 극본을 손에 쥔 나문희였다. 화장실에서조차 연기 연습을 한 것이다.

“누가 배우 나문희를 한마디로 답하라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욕심 많은 배우라고 말 할 겁니다. 그리고 또 누가 인간 나문희를 말하라면 이렇게 말 할 겁니다. 화면에 단 한 컷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었던 인간이라고요. 늘 서민의 어머니로 살면서 남들이 보지 않는 순간에도 잠자리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서민으로 살아야한다고 핏속마저 거짓은 안 된다고.”(노희경 작가)“나문희 선생님처럼 시나리오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는 분을 뵌 적이 없어요.”(설경구)

노희경 작가와 설경구의 언급은 나문희의 연기자로서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을 알려준다. 최고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늘 정진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바로 60대만 되면 식사장면에만 나오는 ‘밥상용 배우’로 전락하는 우리 드라마나 영화 상황에서 70대의 나문희를 당당하게 주연으로 나서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연기자라고 평가를 받는 나문희는 여전히 ‘연기가 나아졌고 발전했다’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KBS 2TV '굿바이솔로'
“연기는 내가 하는 전부이자 전부를 거는 분야입니다. 전부를 거는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시청자는 돌아서지요. 그래서 대본을 받는 순간에서 녹화를 끝내는 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어요. 그리고 연기가 너무 좋아요.”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하는 나문희의 말에서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감사하며 즐겁게 임하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연기론의 대가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배우들은 물고기가 물을 사랑하듯 무대와 예술을 사랑한다. 그들은 예술의 분위기속에서 소생한다. 또 어떤 배우들은 예술이 아니라 배우의 경력과 성공을 사랑한다. 그들은 모두 무대 뒤의 분위기속에서 살아난다. 첫 번째 배우들은 아름답지만 두 번째 배우들은 혐오스럽다.’

나문희는 분명 무대와 연기를 사랑하는 전자의 대표적인 배우다. 그래서 연기자로서 아름다운 성공을 일군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배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나문희 선생님을 존경합니다”라는 황정민 같은 후배 연기자들의 진심어린 찬사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와 관객이 이 시대의 최고의 배우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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