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퇴진 요구하면 “관계없다는 건 거짓말” 후폭풍 우려 일각선 “최필립이 박근혜 말 안듣는다” 주장 정수장학회, 이르면 오늘내일 중 이사회 열어 ‘명칭변경’ 논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고심 끝에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상황은 오히려 더 꼬여버렸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에게 우회적 사퇴를 촉구한 지 5시간 만에 최 이사장이 TV에 나와 “물러날 수 없다”며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는가 하면, 회견 중엔 정수장학회 관련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을 잘못 이해해 뒤늦게 말을 번복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정수장학회가 공익재단이고 자신과 무관한 만큼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음을 밝히면서도 명칭 변경을 요구하며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정치권에선 회견 내용을 떠나 박 후보가 이번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박 후보 성격상 정수장학회 문제가 대선 당일까지 발목을 잡을 것을 알면서도 최필립 이사장에게 ‘우회적 사퇴’를 촉구하는 정도로 해결하려 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야권이 박 후보를 물고 늘어지는 핵심 근거는 최 이사장과의 관계 때문이다. 최 이사장은 박 후보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할 당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박 후보의 측근이다. 따라서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와의 고리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 이사장이 물러나는 것이라는 게 새누리당 내부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박 후보가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두고 현재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박 후보 측근 사이에선 박 후보가 ‘나와 정수장학회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수차례 언급했기 때문에 최 이사장의 사퇴를 종용할 경우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 돼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있다.
다른 한쪽에선 “최 이사장이 박 후보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미 박 후보가 사퇴를 권유했으나, 최 이사장이 버티고 있어 박 후보도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최 이사장이 박 후보 일가의 치부에 대해 상당히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박 후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란 추측을 내놓고 있다.
최근 박 후보 캠프 자체 검증팀이 조사한 대선후보 검증자료에서 박 후보와 관련된 내용이 97페이지 분량으로 보고됐는데, 여기에 이 문제를 포함해 정수장학회와 관련된 내용 상당부분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그러나 “박 후보가 최 이사장한테 책잡힌 게 있다는 등 헛소문이 나돌고 있다”며 “절대 사실이 아닌 날조된 얘기로, 행여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철저하게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 이사장을 비롯한 정수장학회 이사진 5명은 이르면 이날 또는 23일 이사회를 열어 박 후보 회견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이사장의 사퇴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박 후보가 요구한 명칭변경 정도는 검토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