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뮤지컬 '빨래', 서울 달동네 소시민들의 '희망노래'

입력 2012-03-1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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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1~20일 도쿄 재공연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뮤지컬 빨래에서 주인공들이 부르는 넘버곡이다. 이 곡에서 알수 있듯이 뮤지컬 빨래는 서울 하늘 아래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강원도 아가씨 나영이의 어제를, 몽골에서 온 불법체류자 솔롱고의 불안한 미래를 격려하고 위로한다.

◇88만원세대, 불법체류의 노동문제 환기

다세대 주택이 빼곡이 들어선 서울의 달동네, 나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채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지 벌써 5년째다. 나영은 이 회사, 저회사로 전전하며 임시직 서점 직원으로 근근히 생활을 이어간다.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도 좌절된 지 오래다. 작품은 나영을 통해 88만원 세대의 괴로움과 좌절을 현실감있게 전한다.

또 부당해고를 겪은 직장동료의 이야기도 담아내 사회적 권위가 가져오는 폭력성에 대해서도 고발적 메시지를 담았다.

몽골에서 온 청년 솔롱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와서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생활을 한다. 솔롱고의 불법체류신분을 공격하며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공장주 때문이다. 결국 이용만 당하고 해고 당하는 솔롱고를 통해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관객에게 환기시킨다.

한편, 극은 이 둘의 사랑이야기를 축으로 40여년간 몸이 불편한 딸의 용변을 받으며 살아온 욕쟁이 할머니, 기가 너무 강해 늘 공격적이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과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공감과 눈물, 웃음 세 마리 토끼 잡았다

이 작품만큼 관객의 눈물을 빼는 뮤지컬도 드물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관객들이 교류하게 되는 지점은 ‘공감’에 있다. 각자 모든 환경이 똑 같지만은 않더라도 팍팍한 사회에서 느끼는 고단함, 부당함에 대한 답답함, 외로움은 모두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 정서들이 분노가 아닌 희망적 메시지로 귀결될 수 있는 힘은 나영과 솔롱고 주변의 이웃들의 따듯한 위로가 있어서다. 이 가운데 욕쟁이 할머니의 역할이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늘 욕만 하고 다니며 밀린 월세를 내라고 타박하는 욕쟁이 할머니. 무뚝뚝하고 돈만 밝히는 가난한 노인네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그의 삶으로 들어가보면 인내와 헌신의 삶을 묵묵히 견뎌온 인물이다. 어제도, 오늘도 욕쟁이 할머니는 40년 간 딸의 용변을 받아내며 기저귀를 빨랫줄에 널어 놓는다. 이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든 이웃들의 옥신각신 실갱이는 어느새 평정되고 정서적 교감은 풍성해진다.

각 캐릭터는 웃음을 살리기 위해 코믹적 대사, 상황극을 곳곳에 숨겨놓아 극 중 해학을 더했다.

◇무대세트와 캐릭터 등장의 극대화

빨래는 대학로의 오랜 명소, 소극장 학전에서 꾸준히 공연돼왔다. 좁은 무대지만 서울의 달동네 배경을 제대로 담아냈다. 미용실, 작은 구멍가게, 공중전화기, 옥탑방 옆 빨랫줄부터 밤하늘에 별빛 등 모두 세심하게 신경 쓴 무대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나영이가 임시직으로 근무하는 대형서점, 네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 주택, 나영과 솔롱고가 교감하는 장소가 되는 옥상. 삼겹살과 소주를 파는 선술집. 이 모든 장면들은 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접이식 무대장치를 열었다 폈다 하며 빠른 배경전환을 꾀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빠른 배경전환만큼 흥미로운 것은 배우들의 1인 2역 소화에 있다. 총 8명의 배우들이 참여했지만 나오는 극 중 캐릭터는 배가 됐다. 서점의 못된 사장이 구멍가게 주인으로, 솔롱고의 친구가 서점의 아부쟁이 직원으로, 사장의 착하지만 바보같은 아들이 과부의 남자친구로 각각 등장하며 캐릭터는 풍성함을 더한다.

◇소극장 공연, 작지만 강했다

‘빨래’는 작가 추민주씨(36)가 2003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시절 졸업 공연에 올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이후 제 11회 한국뮤지컬대상(2005), 제 4회 더 뮤지컬 어워즈(2010) 주요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았다.

꾸준한 인기와 한국의 서민의 일상을 제대로 표현해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12년 대교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중학교 국어 3-1’과 창비 출판사의 ‘고등학교 문학1’에 ‘빨래’대본의 일부가 수록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소극장 창작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일본에 라이선스 수출되기도 했다. 지난 2월 4일부터 18일까지 도쿄 미쓰코시 극장과 오사카 산케이홀 브리제에서 일본 유명배우들이 출연해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또 이 작품은 관객들의 호평 속에 오는 5월 11-20일 도쿄 롯폰기의 하이유자(俳優座) 극장에서 모두 14회에 걸쳐 재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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