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조 투자 주요기업 1-2대 주주 불구 자동거수기 오명 최근 "주주권 강화해 재벌개혁-수익극대화" 압박 심해져 사기업 통제 수단 가능성에 관치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
주총 시즌을 맞아 세계 4대 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이번 주총에서 과거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 주주권 강화에 나설지 여부 등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번 주총 이슈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전보다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지도 관전포인트다.
그러나 기관 중에서도 큰 손인 국민연금은 지난해 중순부터 주주권 강화 논란에 휩싸이고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하나금융지주로부터 사외이사 파견을 요청받은 국민연금은 아직 관련 가이드라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시일이 촉박하더라도 최대한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 국민연금 측의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말 기준 국내주식에만 62조13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5%를 넘는 액수다. 웬만한 국내 주요 기업들의 1, 2대 주주 위치에 있기도 한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사 중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가지고 있는 곳은 총187개다. 이중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기준으로 하나금융지주(9.35%)를 비롯해 호텔신라(9.32%), 하이닉스(9.15%), KT(8.69%), 제일모직(8.68%), 신한금융(7.09%), 포스코(6.44%), KB금융(6.12%) 등 주요 상장사의 최대주주로 올라서 있다.
이처럼 국내증시의 큰손으로 통하는 국민연금이지만 그동안 의결권을 소극적으로만 행사해 ‘자동 거수기’라는 오명을 듣고 했다. 지난달 31일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2011년 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은 주주총회 안건 2770건 가운데 94.5%에 달하는 2618건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 임원·감사 선임, 보수한도 승인, 스톡옵션, 재무제표 승인, 정관변경 등 거의 모든 유형의 안건에서 찬성률은 95%를 넘겼고 감사선임 안건의 경우 반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때문에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강화해 ‘재벌개혁’에 힘을 보태자는 의견이 점점 힘을 얻다. 하지만 정부의 사기업 통제 수단으로 국민연금이 활용될 수 있어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에 대한 우려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하이닉스 이사선임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을 맡은 지홍민 이화여대 교수,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수천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태원 회장을 이사로 선임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올해 하나금융이 상장사로서는 최초로 국민연금에 사외이사 파견을 요청하면서 논의는 더욱 급물살을 탔다. 국민연금 측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시일이 촉박하지만 최대한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민연금은 아직 관련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주총시즌에서 KT의 문재철 사장 내정자에 대한 적절성 시비 문제와 포스코의 임기만료된 사외이사 교체 멤버 신임 문제에서 국민연금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KB금융지주 주총에서 5명의 임기만료 사외이사 자리에 누구를 선임하는가에 대해 사측과 노조측간의 대립에서 국민연금이 누구 편을 들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문제를 놓고 정당한 주권 행사라는 입장과 관치 통로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이번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행보가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법무법인 율려의 서정욱 변호사 등 법조인 100여명은 국민연금이 이번 주총 시즌에서 의결권을 적절히 행사하지 않으면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을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며 집단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주권 행사를 효과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경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만, 현재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제외하고는 관련 지침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며 의결권 행사를 전담하는 전문인력 또한 한 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남 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가장 적합한 방안은 의결권 행사가 보다 영향력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시키는 것”이라며 의결권행사 세부지침의 보강, 기타 연기금 및 공제회 등을 포함하는 기관투자자 협의회 구성, 안건분석 전문기관의 활용 등 세 가지를 대응방안으로 제시했다.